내년 입주 물량, 2020년 이후 최대임대차시장, 역전세난 가중 우려 확산매매 시장 침체 겹치며 대량 미입주 공포도
  • ▲ 이사용 사다리차. ⓒ뉴데일리경제 DB
    ▲ 이사용 사다리차. ⓒ뉴데일리경제 DB
    역전세난으로 임대차시장이 시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4분기부터 내년까지 입주 물량이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역전세난 심화는 물론, 입주 여건 악화로 미입주 사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건설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5일 리얼투데이가 부동산R114 자료를 분석한 결과 4분기에 전국 9만339가구가 입주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분기까지 분기당 8만737가구가 공급된 것보다 11.8% 더 많다.

    특히 이번 분기 이후 내년에는 △1분기 8만434가구 △2분기 8만8133가구 △3분기 8만3447가구 △4분기 8만6293가구 순으로 분기당 평균 8만4577가구가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이는 2020년 9만738가구 이후 최대치다.

    입주 물량이 늘어나면서 임대차시장에도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은 전셋값 급락에 따른 '깡통전세' 발생이 우려된다.

    실제 최근 입주 물량이 집중된 일부 지역에서는 전셋값이 크게는 30%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힐스테이트 영통' 전용 84㎡의 경우 8월 5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해 5월 8억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진 것과 비교하면 2억7000만원(33.7%) 떨어졌다.

    인근 A공인 대표는 "최근 계약은 갱신이 아닌 신규 계약"이라며 "인근 지역에 입주 물량이 물리면서 지난해 높게는 8억원까지 갔던 시세가 5억원 초반대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 단지에서 약 4㎞ 거리의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에는 7월 '매교역 푸르지오 SK뷰(3603가구)', 8월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2586가구)'이 입주했다.

    최근 6개월 동안 9453가구가 입주한 인천 서구의 전셋값 하락세도 가파르다. 서구 당하동 '검단 힐스테이트 6차' 84㎡ 전세 실거래가는 지난해 8월 4억원에서 올해 4월 3억4000만원, 5월 3억1500만원으로 잇달아 떨어졌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최소 3억5000만원에서 3억7000만원이던 시세가 최근 3억원에 근접했다"며 "검단신도시 내 입주 물량이 많아 집주인들도 어쩔 수 없이 호가를 낮추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구로구의 경우 이달 2205가구 규모의 '고척 아이파크' 입주를 앞두고 여파가 확산하면서 매매와 임대차 모두 거래절벽 상태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는 전용 84㎡의 경우 전세 시세가 7억원까지 떨어졌다. 입주 초 실거래가는 9억원이었다.

    서대문구에서는 ▲이달 '서대문 푸르지오 센트럴파크(832가구)' ▲11월 '힐스테이트 홍은 포레스트(623가구)' ▲12월 'e편한세상 홍제 가든플라츠(481가구)'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이들 단지의 전용 84㎡ 전세 호가는 6억5000만원부터 시작한다. 인근 준공 5년 이내 대단지인 '북한산 더샵(2017년 12월 입주, 552가구)'이 올해 1월 8억원, '홍제 센트럴 아이파크(2020년 6월 입주, 906가구)'가 7월 9억원에 각각 세입자를 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가격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이사는 "신규 아파트 입주가 집중되는 곳은 기존 주택 매도 지연에 따른 미입주나 역전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나아가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전세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건설사들이 우려하는 '미입주 공포'다.

    이처럼 임대차시장의 경우 시세가 내려앉은 상황인 데다 매매 시장은 아예 역대급 거래절벽으로 치닫고 있다. 거래가 원활하지 않으면서 입주 시점을 맞춰 이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애로를 겪으면서 미입주 사태가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입주율은 76.8%로, 8월에 비해 2.8%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입주 원인은 △기존 주택매각 지연 44.7% △세입자 미확보 27.7% △잔금대출 미확보 21.3%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거래절벽과 역전세난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전국 아파트 입주 전망지수는 전월대비 21.9p 하락하면서 조사 이래 최저치인 47.7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매달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입주실적 전망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추산한다. 기준선(100) 아래면 입주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사업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주산연 측은 "입주 전망지수의 경우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이는 단기간 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 침체 우려 및 대출비용 부담 증가,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규제 완화와 공급확대 계획에도 주택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며 "입주율 저하를 막기 위해 주택거래 활성화, 무주택자에 대한 대출 지원 강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입주 여건이 불안해지면서 건설사들도 좌불안석이다.

    건설사 입장에서 입주는 단순히 분양을 마무리하는 단계를 넘어 아파트 분양가의 30%에 달하는 잔금이 들어오는 만큼 현금 유동성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잔금이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일시적인 자금경색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국내 부동산시장은 주택시장 상승기에 공급물량이 대거 몰리면서 수도권 외곽과 지방 광역시를 중심으로 미입주 대란이 발생, 중소건설사들이 대거 부도 사태를 맞은 바 있다.

    대형건설 C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1000가구를 분양하면 미입주가 3%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 경기가 안 좋아지고, 집값이 하락하면서 기존 집도 팔리지 않게 되자 미입주가 확 늘었다"며 "대출까지 막혀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가구가 늘면서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전부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건설사들이 A현장의 자금 상황이 좋지 않으면 B현장이나 C현장의 돈을 끌어와서 충당하고 있다"며 "미입주 리스크가 커질 경우 과거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도미노 쓰러지듯 다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내년 입주 물량 가운데 경기 지역이 10만6254가구로, 전체 입주 물량의 31.3%를 차지한다. 이어 인천 4만2605가구(12.7%), 대구 3만5885가구(10.5%) 등의 비중이 높다. 특히 대구의 경우 올해 2만605가구에서 74.1%(1만5280가구)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