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진로 한정판, 5000여개 오크통에 담겨 숙성 중엄격한 온도, 습도 관리… 정기적으로 위치도 변경1만 리터 대형 오크통에서 숙성 중, 제품화 기다려
  • ▲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의 숙성고.ⓒ강필성 기자
    ▲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의 숙성고.ⓒ강필성 기자
    ‘일품진로’ 한정판 제품은 국내 주류 시장에서도 가장 독특한 술로 꼽힌다. 오크통(목통)에서 20년 이상 장기 숙성을 시킨 유일한 소주이면서 가정용 채널에는 전혀 판매되지 않는다는 점, 한 해에 8000병만 판매된다는 점에서 일반 소비자는 찾기도 힘든 ‘유니콘’ 같은 소주로 꼽힌다.

    그럼에도 이 술을 접한 애주가 사이에서는 고연산 위스키 못지않은 풍미에 대한 칭찬이 입소문을 타고 거론되곤 한다. 과연 ‘일품진로’ 한정판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지난 12일 ‘일품진로’ 한정판의 숙성이 이뤄지는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을 찾아봤다.

    소주 전반의 생산, 출고가 이뤄지는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의 가장 깊은 곳에는 증류주제조라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장은 첫 인상부터 다른 생산라인과 다르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입구부터 솔솔 올라온다. 발효실에서 막걸리가 발효되며 나는 이른바 ‘술이 익는 향’이 건물 전반을 감싸고 있다. 

    이곳에서는 하이트진로 증류 소주 전반의 생산이 이뤄진다. 그리고 이 생산라인 옆의 반쯤 지하로 이어지는 건물에 바로 ‘일품진로’ 한정판의 숙성고가 자리하고 있다. 지문인식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이 숙성실은 이천공장 내에서도 일반 직원 출입이 제한되는 보안시설로 꼽힌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방진복으로 중무장을 해야 한다. 이어 먼지의 유입을 막기 위한 에어샤워를 거쳐했다.
  • ▲ 이영규 하이트진로 양조팀 증류주제조파트장.ⓒ강필성 기자
    ▲ 이영규 하이트진로 양조팀 증류주제조파트장.ⓒ강필성 기자
    이 숙성고는 입이 딱 벌어질 규모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6m는 돼 보이는 창고에 빼곡하게 차 있는 오크통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곳에 숙성되는 오크통은 약 5000개. 국내 최대 규모다. 오크통의 용량은 각 200리터. 숙성 총량만 100만리터에 달한다.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의 숙성을 위해 오크통 전량을 미국에서 사들였다고 한다. 이 오크통은 전량 미국의 버번 위스키를 숙성시켰던 오크통이다. 위스키에서 흔히 ‘버번 캐스크’라고 일컫는 방식이다.

    각 오크통에는 소주 원액을 넣은 날짜와 점검일이 적혀있다. 온도차이가 심한 국내 기후에서는 오크통 숙성이 부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하이트진로는 반지하 숙성고에서 엄격하게 온도와 습도를 통제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했다. 물론 이를 감안해도 손은 꽤 많이 간다고 한다. 숙성고 상부와 하부의 온도, 습도 차이를 고려해 정기적으로 오크통의 위치를 교체해줘야만 한다. 이 때, 오크통의 상하를 뒤집어주는 작업도 진행된다. 

    이런 엄격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원액의 손실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영규 하이트진로 양조팀 증류주제조파트장은 “오크통 내에서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매년 일정 손실이 발생한다”며 “45도의 소주를 넣지만 정작 꺼낼 때는 40도가 안되는 소주가 나온다”고 말했다. 

    휘발성이 강한 고도수 증류주의 특성상 숙성 과정에서 증발은 어쩔 수 없다. 위스키 제조과정에서는 이를 두고 천사들이 술을 나눠 마시고 갔다는 뜻에서 ‘천사들의 몫(Hands, Angels' Share)’이라고 부른다. 
  • ▲ ⓒ강필성 기자.
    ▲ ⓒ강필성 기자.
    ‘일품진로’ 한정판이 매년 제한된 물량으로만 판매되는 점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하이트진로는 ‘일품진로’ 한정판을 매년 내놓고 있지만 그 수량은 8000병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가정용 대신 업소에만 공급된다. 주로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 출고된다고 한다. 소비자가는 약 30만원 중반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늘 품귀를 겪는다. 

    실제 이날 시음해본 한정판은 오크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일반 ‘일품진로’와는 전혀 다른 술로 느껴졌다. 증류식 소주 특유의 곡물향이 잔잔하게 가라앉고 대신 농후한 바닐라 향과 견과류의 부드러움, 달달한 건과일 풍미가 느껴진다. 30도가 넘는 독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 오크통에서 녹아난 은은한 황금빛도 투명한 증류식 소주와의 차이다.

    이 파트장은 “공장에 ‘일품진로’ 한정판을 구하고 싶다는 문의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 숙성 중인 1만리터 규모의 대형 오크통.ⓒ강필성 기자
    ▲ 숙성 중인 1만리터 규모의 대형 오크통.ⓒ강필성 기자
    지난해 22년 숙성 ‘일품진로’ 한정판이 판매된 만큼 올해는 23년 연산의 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물론 이 제품은 올해도 도시전설처럼 입소문만 남길 가능성이 높다.  

    이천공장 숙성고의 앞에는 30여개 대형 오크통에서 ‘일품진로’가 수년째 숙성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이 대형 오크통은 개당 용량만 약 1만리터. 이곳에서 숙성중인 소주가 어떤 제품으로 출하될지는 아직까지 회사 내에서도 결정된 바 없다고 한다.

    추후 가정용을 겨냥한 다양한 ‘일품진로’ 제품에 대한 애주가의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 ▲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일품진로'.ⓒ강필성 기자
    ▲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일품진로'.ⓒ강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