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깡'으로 비자금 조성해 국회의원 99명에 기부법원 "회삿돈으로 알고 있었거나 생각했다는 진술 있어"구현모 등 9명, 법정에 나타나지 않아 불출석 상태로 선고
  • ▲ KT 사옥. ⓒ뉴데일리 DB
    ▲ KT 사옥. ⓒ뉴데일리 DB
    법인 자금을 상품권깡으로 세탁한 뒤 개인 명의로 현직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현모 전 KT 대표에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1부  김상일 부장판사는 5일 오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구 전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구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강국현 KT 커스터머부문장(사장)과 박종욱 KT 대표이사 직무대행(사장) 등 9명에 대해서는 벌금 300~400만원이 선고됐다.

    구 대표 등 KT 관계자 10명은 지난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팔아 현금화하는 '상품권깡' 방식으로 11억 5천만원 상당의 부외자금을 조성했고, 이 중 약 4억 3천790만원을 임직원·지인 명의를 이용해 개인이 후원한 것으로 위장하는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기부한 혐의를 받는다. 

    KT는 국회의원들을 자사 업무와의 연관성에 따라 A·B·C 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고 인당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1천500만원까지 후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치자금법은 법인 또는 단체 자금으로 기부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검찰은 이들이 법망을 피하고자 본인 혹은 친척 등 개인 명의를 활용해 쪼개서 기부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KT 전·현직 임원 10여명도 대관 담당 임원에게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구 전 대표 명의로는 국회의원 13명에게 1천400만원이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구 전 대표 등 10명은 지난 2022년 1월 불법 기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업무상 횡령)로 약식기소됐다. 구 전 대표는 국회의원 13명에게 1천400만원을 기부하고 벌금 총 1천500만원을 명령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같은 달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들이 CR(대관)부문으로부터 전달받은 자금이 CR부문 임원들의 개인 자금이 아니라 KT 법인과 관련된 회사의 자금이라는 사정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피고인들은 수사기관에서 회삿돈으로 알고 있었거나 생각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개인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법인이 직접 또는 법인과 관련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경우 개인에 비해 자금 동원력이 강한 법인의 이익이 상대적으로 과대하게 대표되어 민주주의 원리가 침해되고, 법인이 주권자인 개인의 지위를 차지해 국민주권의 원리를 훼손시킬 염려가 있고 정치활동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상당히 크다"고 판단 이유를 밝혔다.

    구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지난 5월 최후변론에서 "피고인들은 CR(대관)부문 임원들이 기본 계획을 수립·조성한 정치자금을 전달한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며 유사한 사건들에서 핵심 관여자만 입건됐던 사례를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구 전 대표가 이날 선고기일에 나타나지 않자 불출석 상태로 판결을 선고했다. 이날 KT측에서는 박대수 전 KT텔레캅 대표를 제외한 9명이 모두 불출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