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금강제화 입사해 34년 인연‘구두 제작의 시작과 끝’이라 불리는 라스트 개발이 주전공2007년부터는 비스포크 라인으로 옮겨 수많은 유명인 신발 제작
  • ▲ 금강제화에 34년째 근무 중인 양성모 기정. ⓒ서성진 기자
    ▲ 금강제화에 34년째 근무 중인 양성모 기정. ⓒ서성진 기자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 이다.

    1991년 금강제화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라스트(족형) 개발 기능사로 활동하고 있는 양성모 기정은 이같은 1만 시간의 법칙을 가뿐히 뛰어넘은, 국내 유일무이한 ‘수제화 장인’으로 통한다.

    살롱화 업체에서 구두를 닦으며 가죽 재단, 본드칠, 밑창제작 등 수제화 만드는 기술을 어깨 넘어 배우다 금강제화와 인연을 맺은 양성모 기정. 그는 남다른 손기술로 보통 5년은 걸리는 숙련공 기술은 2년 만에 마스터했다.

    ‘구두 제작의 시작과 끝’이라 불리는 라스트 개발은 양성모 기정의 주 전공이다. 발 형태와 사이즈, 발등 높이, 발 볼 둘레 등 치수를 재며 라스트를 깎아온 세월만 30년이라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체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꿰뚫고 있다.

    그는 “과거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구도 작고 발도 작아서 대체로 길이가 짦고 아담한 스타일의 신발들이 많았다”며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사이즈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눈높이가 높아져 라스트를 만들 때 반영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 ▲ 구두를 만드는 틀이 되는 라스트(족형). ⓒ서성진 기자
    ▲ 구두를 만드는 틀이 되는 라스트(족형). ⓒ서성진 기자
    지금까지 양성모 기정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수천개의 라스트 덕분에 금강제화는 한국인의 평균 발 사이즈에 맞는 고품격 수제화를 수월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기성화이지만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한국인 특성에 완벽히 맞춘 제품이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맞춤 수제화 만큼이나 편하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금강제화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스포크’(맞춤구두)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양성모 기정을 비스포크 라인으로 불러들였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만든 비스포크 제품만 180개가 넘는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은 물론이고 굴지의 대기업 오너,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는 스포츠 선수 등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양성모 기정이 만든 구두를 신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차범근 전 감독의 신발을 제작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차범근 전 감독의 발은 오랫동안 운동을 한 탓에 변형이 많이 온 상태였다. 양성모 기정은 “꼼꼼하게 수치를 재고 발 특성을 반영해 구두를 만들어 드렸는데 차범근 전 감독이 ‘구두인데 운동화처럼 편하다’고 하더라”며 “잊지 못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한 번은 이탈리아 대사가 고객으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그는 구두 바느질 땀수와 끈 간격까지 깐깐하게 요청했다.

    양성모 기정은 “이탈리아가 워낙 패션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나라이다 보니 세심한 것까지 요구사항이 많았다”며 “그런데 결과물을 보고 너무 흡족해하며 ‘감사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 ▲ 금강제화 양성모 기정. ⓒ서성진 기자
    ▲ 금강제화 양성모 기정. ⓒ서성진 기자
    양성모 기정은 금강제화 비스포크 라인이 세계 어느 나라의 명품과 비교해서 결코 뒤처지지 품질을 갖췄다고 자부했다. 30년 이상 노하우를 가진 기술자들이 최고급 가죽으로 한국인 발에 딱 맞는 신발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금강제화의 수제화 자부심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젋은 직원들에게 1대 1로 기술도 전수하고 있다.

    그는 “발 모양이 평균에서 벗어나 기성화를 신지 못하는 분들이나 나만의 헤리티지를 갖고 싶어하는 분들은 여전히 금강제화 수제화를 꾸준히 찾고 있다”며 “금강제화의 국보급 기술이 사라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