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전세대출 조이기‧보증금 늘어난 만큼만 대출은행 '대출 사절'에 이사 앞둔 실수요자 혼란중저신용자‧저소득층 고금리에 노출, 생계대출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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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압박에 은행권이 생계형 자금으로 주로 쓰이는 마이너스통장(신용한도 대출)과 생활안정자금 한도까지 줄이고 있다. 

    이미 부동산 매매계약을 치르고 조만간 잔금 대출을 앞둔 실수요자들은 나날이 높아지는 대출 문턱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0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사 날짜가 코앞인데 잔금 대출의 한도가 막히면 어떻게 하나’ ‘저축은행이나 보험사 등 2금융권도 추가 대출이 안 되는 것이냐’ 등 대출 걱정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생활안정 주담대 제한,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강도높은 압박에 따라 고금리와 한도 축소 등을 활용해 일률적으로 대출을 옥죄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다음달 3일부터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 등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전세대출을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에서만 취급하기로 했다. 투기성 자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임대인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은 중단된다.

    앞서 국민은행은 29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중 생활안정자금대출 한도를 최대 1억원으로 제한했다. 또 서울과 수도권 내 주택구입자금대출 최장 대출기간을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했다.

    아울러 토지담보대출 취급을 중단하고 통장자동대출(마이너스통장) 한도도 제한했다. 모기지 보험 가입(MCI·MCG)과 거치기간 등 주담대 운용 사항도 제한키로 했다.

    지난달 29일부터는 2주택 이상 다주택자 대상과 다른 은행에서 넘어오는 대환 용도의 주담대 신규 취급을 제한했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3일부터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를 연간 1억원으로 제한한다. 

    주택담보대출 모기지보험(MCI·MCG) 가입도 중단한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 시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이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제외한 금액만 대출받을 수 있다. 

    사실상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지역별 소액임차보증금은 ▲서울 5500만원 ▲경기 4800만원 ▲광역시 2800만원 ▲기타 2500만원이다.

    MCI·MCG 가입이 제한되면 지역에 따라 그만큼 대출 한도가 축소된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됨에 따라 대출 관리 방안을 시행하기로 했다"며 "무주택자 등 실수요자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내달 2일부터 MCI·MCG 가입을 제한한다. 소유권 이전, 신탁등기 말소 등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도 중단한다.

    다주택자의 생활안정자금 목적 주담대 한도는 기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줄인다. 또 대출 모집법인별 월간 한도를 2000억원 내외로 관리할 예정이다.

    신한은행은 플러스모기지론(MCI·MCG)과 조건부 전세대출도 취급하지 않는다. 임대인(매수자) 소유권 이전 조건, 선순위채권 말소 또는 감액 조건, 주택 처분 조건 등이 해당한다.

    기존에는 서울보증보험, 도시보증공사 전세자금대출만 취급을 중단해왔으나 신탁등기 물건지 주택금융공사 전세대출의 취급도 중단했다.

    ◇실수요자 대출절벽… 생활비 충당 어쩌나

    은행들이 주담대나 전세대출뿐만 아니라 마이너스통장과 생활안정자금 대출까지 조이면서 실수요자 피해가 우려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주담대 심사 강화 지침이 영업점에 내려온 이후 대출승인 과정에서 대출 심사기준이 바뀌면서 대출 한도·만기는 줄어들고, 월 상환액은 늘어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갭투자 등에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제한한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의 일률적인 ‘대출 사절’에 실수요자, 장기적으로는 금융 취약계층이 곤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도 마이너스통장 한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존 1단계에선 은행권 주담대에만 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결정했지만, 2단계부터는 은행권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로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미 DSR 40% 한도를 모두 채운 대출자의 경우 연간 소득이 오르지 않는 한 마이너스통장을 포함한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또 대출이 막힌 은행에서 지방은행 등 다른 은행으로 이동하는 쏠림현상이 발생해 연쇄적으로 대출중단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시중은행이 주담대 금리를 앞다퉈 인상하면서 일부 지방은행과 보험사의 주담대 금리(하단 기준)보다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 낮은 금리와 높은 한도를 좇아 대출 수요가 이동하고 있지만 이 같은 풍선효과도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지난 2021년처럼 주담대를 아예 중단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절벽’ 우려가 거세지자 금융감독원은 결국 실수요자의 애로사항을 듣기로 했다. 

    금감원은 내달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신관에서 '가계부채 관련 대출 실수요자·전문가 현장 간담회'를 개최한다.

    간담회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모두 발언에 이어 대출 실수요자의 애로사항과 금융권·부동산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을 제때 통제하지 못한 정책 실패가 주택 실수요자와 생계비가 필요한 이들의 대출 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리인하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주택시장에서 투자수요(가수요)가 꿈틀대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은행들이 주담대 공급을 타이트하게 줄이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면서도 “다만 서민 생계를 위한 신용대출은 공급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