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증권, 확인 안 된 정보 담아 주가 급락하자 내용 삭제리서치 불신 지속…거꾸로 전망·'매수' 의견 일색 리포트 애널리스트 헛발질에 투자자 '외면'…업계 자정 노력 절실
  • '매수' 일변도나 예측에서 벗어난 보고서로 개인투자자들의 뭇매를 맞아왔던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신뢰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담아 주가 급락에 영향을 줘놓고 슬그머니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다소 황당한 행보로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을 사는 모습이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화정밀기계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3거래일간 주가가 16.7% 급락했다. 17일 2조1361억원이던 시가총액은 그 사이 1469억원가량 증발했다.

    주가가 급락하기 시장한 건 자회사인 한화정밀기계가 SK하이닉스의 HBM용 TC본더(칩을 결합하는 장비) 퀄테스트(최종 신뢰성 평가)를 탈락했다는 설이 시중에 떠돌면서다. SK하이닉스가 HBM 핵심 적층 장비인 'TC 본더' 공급사 다변화 전략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화정밀기계가 SK하이닉스의 퀄테스트에서 실제 미달 평가를 받았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시장의 의혹에 대해 한화정밀기계는 "현재 SK하이닉스 측의 퀄테스트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검증이 완료 되는대로 납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의 회사 측에 대한 확인 없는 정정 리포트는 주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지난 18일 오전 한미반도체 리포트에서 "본딩 장비 납품이 내년 상반기로 이연돼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면서 목표주가를 기존 30만원에서 17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주가 조정에 따른 목표주가 괴리율을 고려해 목표가를 내렸다고 설명했음에도 이날 한미반도체 주가는 10% 넘게 하락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존에 제시한 목표주가 30만 원과 현재 10만 원대인 주가 사이의 괴리율 때문에 하향 조정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언급했음에도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데 따른 조치였다.

    주가가 급락하자 곽 연구원은 '시장의 오해에 대해 정정합니다'라는 두 번째 리포트를 통해 해명했다. 그는 "SK하이닉스가 공급사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H사의 열압축접착장비(TC본더) 퀄테스트(성능평가)를 진행해왔으나 실제 평가기준 미달로 인해 탈락됐음을 확인했으며, ASMPT 역시 동사의 TCB 기술력과는 매우 격차가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해명이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주가에 영향을 줬다. 시장에서 'H사'를 한화정밀기계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앞서 한화정밀기계 측이 공식적으로 평가 탈락과 보도와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을 낸 이후였지만 이 내용을 곽 연구원은 리포트에 실은 것이다. 결국 곽 연구원은 한화정밀기계의 내용을 "언론을 통해 실제 평가기준 미달로 인해 탈락됐음을 확인했다"는 문구로 수정했다. 

    이같은 수습에도 주가는 회복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걷고 있다. 22일 오전 10시40분 기준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의 주가는 전일 대비 3.81% 하락한 3만7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이례적인 상황이어서 개인투자자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종목토론방에서 한 투자자는 "남의 집 불 태워놓고 뒤늦게 지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삼성전자 때문에 퀄테스트 노이로제 걸린 시장에서 이번 리포트로 인해 이미 기업 센티가 깨어지고, 의심의 씨앗이 심겨진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헛발질 전망·매수 일색 리포트에 투자자 불신의 대상

    그간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는 잦은 헛발질로 개인투자자들에게 불신의 대상이 돼왔다.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때도 증권사가 내놓은 실적 전망치와 실제 실적이 크게 다른 경우가 다수 발견됐다. 코스닥 시가총액 2위인 에코프로비엠도 당초 증권사들은 135억원의 영업적자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9억원의 흑자를 냈다. 재고자산평가충당금 474억원이 반영된 덕분이다.

    잘못된 전망을 해놓고도 증권사들은 '추가 하락 기다려보자', '끝나지 않은 시련' 등 부정적 전망을 담은 제목의 보고서를 내며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내려잡았다.

    지난 2분기 엔씨소프트는 증권가에서 14억원의 영업적자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8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적 발표 다음 날인 8월 6일 증권가에서는 목표주가를 줄하향했는데, 이날 이후로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면서 16만원대이던 주가가 이달 초 22만원을 돌파했다.

    증권사 리포트가 '매수' 일색이라는 점도 이에 대한 신뢰를 낮추는 대목이다.

    지난달말 기준으로 31개 국내 증권사 중에 매수 리포트 비중이 90%를 넘는 곳은 24곳에 달한다. 한양증권과 SI증권은 매수 리포트 비중이 100%, 나머지 7곳도 매수 리포트 비중이 80%를 상회한다. 매도 리포트가 있는 증권사는 신영증권(1.4%)과 iM증권(0.7%), 유진투자증권(0.6%), 하나증권(0.4%)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는 증권사 법인영업본부가 자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기반으로 국내외 기관 투자자 등에게 세일즈하는 환경 탓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상장 종목과 경제를 분석하는 본연의 업무보다 IB(기업금융) 등 타 부서 영업이 원활하도록 리서치 보고서를 잘 포장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당국도 리서치 보고서의 신뢰성·독립성을 제고하겠다며 애널리스트 성과 평가 체계 개선, 독립리서치회사(IRP)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당장은 회의적이라는 평가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개인 투자자들은 증권사의 기업분석 리포트가 아닌 유튜브나 주식투자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찾아 투자 정보를 취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카더라 등 잘못된 정보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도 적지 않다.

    개인 투자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신뢰 회복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리서치업계가 무너지고 있지만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리서치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선 증권업계 공동의 적극적인 변화 의지가 중요하다"며 "애널리스트들의 태도와 투자자들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증권사들도 리서치 기능 정상화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