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 '팔자' 계속 … 삼성전자만 13조HBM 부진, 내부 실기 겹쳐 … 역대 최저삼성전자 넘어 한국경제 전반 위기감"주52시간 완화, 직접보조금 지급 빨리"
  • ▲ 이철규(오른쪽)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 이철규(오른쪽)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혼란이 큰 국내 반도체업계가 정책으로도 소외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하긴 했지만 당장 급한 보조금 지원이나 주 52시간 근로 규제 완화 같은 방안이 온전히 실현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글로벌 반도체 패권 확보에 올인하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과 대조된다는 자조도 나온다.

    ◇ 기대 이하 '반도체 특별법'...'직접' 보조금엔 여전히 금줄

    1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민의힘이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실망이 잇따르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과 주52시간제 적용 예외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난색을 보이면서 법안 통과에 난항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는 큰 뜻에는 동의하지만 특히 주52시간제 예외 적용과 같은 근로시간 유연화에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고 직접 보조금 형식의 재정 지원 또한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표하고 있다.

    보조금에 대해선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는 '직접' 보조금이 반도체 산업 지원의 주된 방식이 되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번 법안에도 '직접' 보조금이라는 용어 대신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임의조항에 담았다. 지원 규모 역시 시행령에서 정한다는 수준으로 정리됐다.

    앞선 반도체 지원 정책에 비해선 상당부분 진전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에 따라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됐지만 실효성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여전하다.

    반도체업계에선 정치권이 아직도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특성과 경쟁 포인트를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 특성 상 반도체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생산공장과 설비에 대규모 투자가 필수고, AI(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는 시장 분위기를 읽고 그에 맞는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가 선(先) 보조금 형태로 기업들을 지원하면 보다 공격적으로 기술 개발과 생산능력(CAPA) 확대가 가능하다. 결국 시장에서 경쟁사들과 가격 경쟁에 나설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I 수요가 반도체 시장 핵심으로 떠오르면서부터는 무엇보다 선제적인 기술 개발과 투자, 수요 파악이 기업의 흥망을 결정짓는다"라면서 "반도체 패권 전쟁이 '쩐의 전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 ▲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전경 ⓒ삼성전자
    ◇ 반도체 패권 향한 美·中·日 '쩐의 전쟁' 진행형...韓 속도내도 될까말까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도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앞다퉈 재정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어 국내 상황에 대조된다.

    미국은 이미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자국 기업은 물론이고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외국 기업들에도 수백조 원대 직접 보조금과 저리 대출 등을 지급키로 한 상태다. 트럼프 정부 2기가 출범해도 이 같은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대신 기업들의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거나 제2, 제3의 생산공장 신설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반도체 패권을 확장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규제 가운데도 레거시(구형) 반도체 시장부터 조금씩 점령해나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 핵심 반도체 기업들에게 퍼붓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 기타 인센티브 등을 합하면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추측도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막대한 투자가 이어진 덕분이다. 레거시 메모리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존 3강이 중국 회사들의 가격과 물량 공세에 실적에 타격까지 입기 시작했다.

    최근엔 미국 규제로 넘보기 힘들 것 같았던 첨단 반도체 기술까지 속속 공개하고 있어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경고등이 켜졌다. 아직 양산 단계까진 멀었다는게 업계의 중론이지만 든든한 정부 보조금이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중국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점령하는게 시간 문제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시장에서 완전히 뒤쳐진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마저도 한국 정부보다 공격적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2030 회계연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 10조 엔(약 90조 원) 이상의 공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12일(현지시간) 밝혔다.

    이에 앞서서도 일본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 공장을 자국 내에 유치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일자리 확대와 지역 활성화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새 정권에서도 이 같은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 발전을 우선순위에 두고 지원을 이어간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에 대비해 정부의 반도체 특별법을 기반으로 한 지원이 보다 구체적이고 속도감 있게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권의 이념 싸움이 아니라 코 앞에 닥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실감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HBM부진이나 내부 대응 미비는 이미 주가에 선제적으로 반영된 상태"라며 "더 큰 문제는 삼성을 넘어 한국경제 전반을 비관적으로 보는 외국인들의 이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부활을 위한 민관정 아웃리치가 절실하다"며 "특히 정치권의 K칩스법 논의가 더 빨리 속도를 내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