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특위 '혼합진료 금지' 카드에 학계 "현실적 어려움" 토로자기부담률 상향 앞서 비급여 표준 가격 책정 필요 주장비급여 항목 무제한 개발 가능한 현실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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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연내 대대적인 실손보험 개혁을 예고한 가운데 '비급여' 관리 방안 실효성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자칫하면 개인의 의료비 상승만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급여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서는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잇다른다. 

    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비급여 진료비는 연간 17조6000억원 규모다. 지난 2015년 11조5000억원이었던 비급여 진료비는 꾸준히 상승세를 나타냈다. 2021년에는 전년 대비 11.3% 증가하며 17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병원과 의원에서 많이 발생하는 비급여 항목은 실손보험 지급 보험금의 60%가량을 차지한다.

    ◇의료개혁 특위 '혼합진료 전면금지'에 학계 "실효성 의문… 시장왜곡 우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 특별위원회는 연내 비급여·실손보험 개선 방안 마련을 예고했다. 대표적인 추진안인 혼합진료 전면 금지에 학계가 우려의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5일 열린 보험연구원의 '건강보험 지속성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혼합진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굉장히 조심스러운 내용"이라며 "정부의 개입이 자칫하면 시장을 왜곡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혼합진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과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 진료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과잉 진료를 권할 때 오용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정부의 혼합진료 금지에 대해 의료계와 일부 전문가들은 꼭 필요한 진료의 범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했다.

    의사들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개발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건보 재정누수와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을 막기 위해 특정 비급여 진료를 급여화하거나 환자 자기부담률을 높여도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개발하는 꼼수로 이를 피해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현실적 측면에서도 혼합진료 금지를 실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의료 현장에서 필요에 의해 혼합진료가 빈번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는 질환의 특성에 따라 제한적으로 비급여 진료를 인정하는 기준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보건복지부에 '비급여관리과' 신설을 제안했다. 현재 건보공단은 비급여관리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복지부에는 비급여를 전담 관리하는 부서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자기부담률 상향만이 답 아냐"… 깜깜이 '비급여 가격' 표준안 설정돼야

    전문가들은 비급여 관리를 위해 정확한 현황 파악이 선행돼야 하며 비급여 보고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올해 도입된 비급여 보고제도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연 1회, 병원급 이상 기관은 연 2회 비급여 현황을 공개한다.

    이를 분기별 혹은 전체 비급여 전산자료를 공개로 확대해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특정 치료나 수술을 하는 데 드는 대략적 비용을 국민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비급여 진료의 가격에 대해서는 표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보험업계와 학계의 의견이 모아졌다.

    권병근 손해보험협회 이사는 "현재 의료기관 간 비급여 진료 가격 차이는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이른다"며 "정부가 비급여 항목의 표준 가격을 결정하고 이를 관리할 별도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는 비급여 진료의 표준 가격을 정부가 결정한다. 국내 학계에서는 대한의학회를 중심으로 각 학회별로 표준 가격을 자율 결정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실손보험금 청구가 많은 비급여 진료 최대 10개를 '관리급여'로 지정해 사실상 건보 적용 급여 진료처럼 취급하는 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급여의 환자 본인 부담률은 95%로 높게 책정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기존에는 실손보험금으로 사실상 '공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항목들에 대해 환자에게 진료비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이 4세대까지 나오게 된 배경도 비급여 과잉 진료를 막겠다는 것인데 결국 본질적으로 이 문제를 풀려면 의료기관마다 심하게는 수십,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나는 비급여 가격의 표준 가격이 설정돼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민영보험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부담률 상향 뿐 아니라 과잉 진료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번 기회에 꼭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