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野, 감액 단독 주도... 검·경 특수활동비 전액 삭감이재명표 지역화폐 이견 그대로... "예산 감축에 추경 불가피"
  • ▲ 국회 본회의장 모습 ⓒ이종현 기자
    ▲ 국회 본회의장 모습 ⓒ이종현 기자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이 야당 단독 주도로 통과됐다. 싹둑 잘린 예산안이 통과된 배경에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 증액을 볼모삼아 야당이 흥정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뿐만 아니라 치안·민생, 사회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재정 공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전날 본회의를 통과한 예산안은 673조3000억원으로 정부안 대비 4조1000억원 감액됐다. 감액된 예산안에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치안과 서민경제를 위한 민생 예산이 대거 포함돼 있다.

    우선 검·경찰의 치안 유지와 각종 범죄 수사를 위한 예산이 대폭 삭감되며 국민 안전 방패막이 얇아졌다. 마약과 보이스피싱, 주가조작, 치안활동 등에 쓰이는 검·경찰의 특수활동비 및 특정업무경비 총 618억 6600만원이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해당 예산에는 인권 보호 등 검찰 업무 지원 특활·특경비 50억2100만원, 마약 수사 특활·특경비 21억3500만원, 딥페이크·인공지능(AI)을 활용한 첨단 범죄 및 디지털 수사 특활·특경비 1억9800만원 등이 포함됐다.

    공공기관·공기업 등을 감시하는 감사원의 특활·특경비 총 60억3800만원도 증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용처를 알 수 없는 특활비와 특경비를 삭감했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마찬가지로 깜깜이인 국회 특활·특경비 195억원가량은 전액 유지됐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야당은 공적 자금을 투명하게 사용하자는 취지겠으나, 목적에 따라 내역을 밝히기 어려운 것도 있을 것"이라며 "특활비는 필요하다. 그래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이 당연히 편성되겠지만 국회가 내로남불이란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예비비도 정부안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절반이 줄었다. 해당 감액안에는 폭설·폭우 등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예비비 1조원도 포함돼 있는 만큼 당장 다음 달부터 대규모 폭설이 발생하면 이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해질 거란 우려가 제기된다. 

    이 외에도 △전공의 지원 예산 931억원 △기초연금 급여 예산 500억원 △청년도약계좌 지원 예산 280억원 △대학생 근로장학금 지원 예산 83억3200만원 △취약 계층 아동 자산 형성 지원 예산 21억4800만원 등 민생과 직결된 예산도 줄줄이 삭감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약계층을 비롯한 민생 경제 예산은 국민들의 최소한의 자립을 도와줄 수 있는 중요한 예산"이라며 "과거에는 여야가 합의를 통해 예산을 토출했는데 당파 우선주의로 인해 이제는 다수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켜버린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국가 경제를 이끌 차세대 산업들도 현 정부에서 추진됐다는 이유로 엎어질 위기에 놓였다.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 정부가 편성한 '민관 합작 선진 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 연구개발(R&D)' 예산은 70억원 중 90%에 해당하는 63억원이 삭감됐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을 위한 출자 예산 505억5700만원은 8억37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한미·한일 등 양자 경제 진흥을 위해 편성한 '재외공관 경제외교 현장실습원 파견' 예산 11억6700만원은 전액 삭감됐다.

    문제는 이같은 예산 삭감이 여야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을 두고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본회의 개의 직전 민주당에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을 올해 수준인 3000억원으로 증액하자고 제안했으나, 민주당은 해당 규모를 1조원으로 늘리자고 요구하면서 막판 협상이 결렬됐다. 

    사실상 당정이 이재명 표 예산을 늘려주질 않자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야당이 치안·민생 예산을 볼모삼아 같이 죽자는 식의 '물귀신 작전'을 펼친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당의 단독 감액은 지나친 행위가 맞다"면서도 "계엄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만큼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도 그저 '야당 탓'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