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제고? … 속내는 LP 수익률 올리기중장기 투자 등 기업가치 제고와 충돌생산성 증대 등 본원적 경쟁력 의문산업계 "남일 아냐" 우려 확산
  •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MBK파트너스
    “한국 대기업 재벌은 3세 또는 4세까지 소유하고 있다. 구조적인 장애물이 있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 시장은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 시장보다 역동적인 경향이 있어 빠르게 변화할 수 있다.”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선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최근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바이아웃(경영권 인수·매각) 투자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한국과 일본의 바이아웃 투자에서 중요한 테마는 기업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라고도 강조했다. 기업 지배구조를 겨냥한 PEF들의 활발한 투자로, 일본 전체 시스템은 더욱 투명하고 책임감 있으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김 회장은 설명했다.

    고려아연, PEF의 첫 바이아웃 제물로

    겉보기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MBK의 표적이 된 기업 입장에서 이 발언은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의 저주’로 들리며 긴장감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는 평이 나왔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오너 총수의 경영’을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PEF는 경영난에 빠진 기업을 인수‧합병(M&A)해 정상화한 뒤 높은 가격에 매각하며 나름대로 구조조정의 순기능 역할을 했다. MBK도 이를 통해 명성을 얻었고 아시아 최대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성장했다.

    MBK는 M&A의 범위를 고려아연과 같이 우량기업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세운 명목은 ‘거버넌스 개선을 통한 투명성 제고’로, 적대적‧약탈적 M&A란 비판에도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경영권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들에게 대기업 창업주의 경영철학인 ‘사업보국(事業保國)’은 큰 의미가 없다.

    산업계에선 MBK의 국내 첫 번째 바이아웃 제물로써 고려아연이 매우 매력적인 기업이라고 설명한다. MBK를 비롯한 PEF 운용사들은 고려아연 인수전이 PEF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상에 좀 더 이슈화하기를 바랄 것이란 분석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PEF들은) 투자자나 국민에게 확실히 각인되면 이후 다른 목표 기업을 사냥할 때 거부감이 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고려아연 인수도 오로지 성공하는 데만 몰두할 뿐 이후 대한민국 산업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그럴싸한 주주가치 제고 … 속내는 LP 수익률 증대

    금융자본 신봉자들이 종교적 신념이자 사상으로 여기는 말이 있다. “기업은 투자자 수익 극대화라는 법과 책임이 있으며,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의 인터뷰 발언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주주가치 증대’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주주가치’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는지를 추정하는 기대치다. 기업의 내실이 튼튼해지고 이익 규모가 커져 배당을 대폭 늘릴 수 있게 되면 주주가치가 증대됐다고 말한다.

    MBK와 같은 PEF는 베일에 가려진 투자자(LP)의 이익만을 철저히 추구하는 데 있어 어떤 금융자본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PEF에게 있어 기업가치 제고는 LP의 가치, 즉 수익률 제고에만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외치는 주주가치 증대는 본연의 의미인 기업가치 상승이 아니란 얘기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는 지난 2016년 펴낸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에서 주주가치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희생시켜서라도 주가를 부양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재무적 성과에 치중하는 경영자들의 슬로건이 됐다고 단언했다.

    주주가치는 과거 ‘기업 사냥꾼’이라 불리다가 일종의 말장난을 통해 ‘행동주의’ 투자자로 둔갑한 칼 아이칸, 빌 애크먼, 대니얼 로브 뿐만 아니라 한국에 진출한 PEF 운용사 최고경영첵임자(CEO)들이 내세우는 명분으로 쓰이고 있다.

    포루하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미국 기업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투자자에게 건넨 돈은 1조 달러(약 1396조원)로,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사이 임금 지불은 정체됐고, 자본재·공장·직원 교육 등 성장 촉진을 위한 기업 투자도 위축됐다.

    금융화한 기업은 노동자는 물론 관리자의 기술력, 전문성도 퇴화했다. 기업이 점차 금융화되면서 관리자는 회사의 재무적 성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반면 생산돼 나오는 실제 제품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본원적 사업경쟁력 의문

    전문가들은 금융화된 국가 경제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에니스 카루바 국제경제은행(BIS) 수석 경제학자와 스티븐 체케티 브랜다이스대학교 교수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15개국의 사례 연구를 통해 금융 부문이 급속히 확장되는 시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여기서 생산성이란 개별 노동자가 경제에서 창출해 내는 가치로, 성장을 견인하는 기본 요소다. 생산성 저하에 따른 타격은 첨단 제조업과 같이 장기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핵심 역할을 하는 국가기간산업이 가장 크게 받게 된다.

    이때 금융자본은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빠르고 안정적인 단기 수익을 가져다주는 부동산 영역에 투자를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 자산은 경제위기 때 팔고, 호황엔 증권화할 수 있는 담보물로 활용된다. 2008년 금융 위기에 최악의 타격을 입은 국가들의 신용과 부동산이 호황이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 ▲ ⓒ리더스인덱스
    ▲ ⓒ리더스인덱스
    고려아연과 MBK측이 날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인수기업들의 성적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MBK가 소유한 6개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인수 첫해 평균 7%에서 3년 후 4.8%로 2.2%p 하락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평균 ROE가 1.5%p 높아진 것과 대조된다. 매출 증대 면에서도 MBK 인수 기업은 0.9% 성장에 그쳐 다른 PEF에 비해 저조했다.

    반면 고려아연측은 최윤범 회장 체제에서 ROE는 8.1%에서 2년 후 8.6%로, 매출은 7조5819억원에서 11조2193억원으로 48% 상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기승 … 산업계 우려 확산

    고려아연 사태로 말미암아 산업계 전반에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최근 발표한 ‘행동주의 캠페인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경우 기업가치 저평가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데이터분석기관 인사이티아(Insightia)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타겟이 된 한국 대상 기업의 개수는 2017년 3개에 불과했으나 2019년 8개에서 지난해에는 77개로 최근 5년 사이에 9.6배나 증가했다. MBK‧영풍의 고려아연 적대적 M&A와 같은 국내 기업을 위협하는 상황이 향후 더욱 빈번하기 벌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한경협은 “행동주의 캠페인이 성공하면 단기적으로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배당을 늘리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 고용과 투자 감소 등 기업 펀더멘탈이 악화하면서 기업가치의 저평가가 심화된다”며 “행동주의 캠페인이 급증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계는 한 국가 경제가 PEF 등 행동주의 투자자 중심으로 한 금융화의 길로 들어서면, 비금융 기업의 일상적 경영활동조차 금융적 사고방식이 지배해 기업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 부정적으로 왜곡돼 버린다고 우려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위력이 실물 경제를 압도하면서 공정한 경쟁 환경이 망가지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사회경제적 피라미드의 최상위 집단이 제반 자원을 틀어쥘 수 있다. 그에 따라 자원 분배의 비효율성도 심해져 저성장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개별기업의 사례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상황을 관망만 할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활동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금융자본으로부터의 적대적 M&A를 당하지 않도록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는 법‧제도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