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일주의에 반도체업계 긴장보조금 확정했지만 추가 조건 기류對中 고강도 규제… 격차 벌릴 기회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기 때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를 표명하는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이하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기준을 바꿀 가능성이 여전하지만 중국 반도체에 대한 강력한 견제책을 추가한다면 빠르게 추격하는 중국을 저지할 시간은 벌게 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전날 미국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 중앙홀에서 취임식을 진행하며 본격적인 임기를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으로 국내 산업계에서도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부터 줄곧 더 강력한 미국을 만들기 위한 '미국 우선주의', 더 나아가 '미국 유일주의'를 주장하고 있어 경제 분야에서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국부를 확대하는데 초점을 둔 강도높은 보호무역 체제가 예상된다.

    국내 수출 주력업종이자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반도체 산업계에선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걱정이 깊었던 것이 사실이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목표로 반도체 생산시설을 확보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여기에 화답해 미국 투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바이든 정부의 색을 완전히 지우고 더 강력한 자국 중심주의 정책을 펼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이다. 다행히 지난해 연말 양사 모두 보조금 규모를 확정하는 계약을 체결해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실제 보조금 집행과 현지 공장 완공 및 가동이 모두 트럼프 임기 중에 대부분 이뤄질 예정이라 트럼프 정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당초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 된 지난해 반도체업계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자체를 축소할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일단 보조금 지급 계약을 마무리 지으면서 보조금 자체를 번복할 확률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이후에 보조금 수령에 따른 추가 조건들이 붙을 수 있다는 리스크는 여전하다. 지난해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반도체 생산 관련 기밀이 유출될 수 있는 정보 공유나 수익 공유 등의 독소조항이 빠지긴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를 되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여기에 세제 혜택이나 대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깐깐한 기준이나 조건이 발목을 잡을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 지역에 파운드리 신공장을 건설하는 데 따라 지난해 47억 4500만 달러(약 6조 9000억 원) 보조금을 받기로 최종 계약했지만 매해 가파르게 오르는 공사비와 내년 공장 가동 후 실질적인 비용 부담까지 고려해보면 미국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나마 SK하이닉스는 아직 생산기지 건설에 첫 삽을 뜨지 않은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트럼프 임기 내에 대부분의 건설과 채용, 공장 완공과 가동 모두 이뤄져야 해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더 예민할 수 밖에 없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AI(인공지능)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와 연구시설을 건설하고 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른 보조금은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확보한 상태다.
  •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 전경 ⓒ삼성전자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 전경 ⓒ삼성전자
    앞으로 트럼프 정부와 반도체 보조금 관련해 의견이 충돌할 리스크는 있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에 훨씬 더 강도 높은 규제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은 한국 반도체 제조사들에겐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평이다.

    중국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부터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무역 제재를 시작으로 기술 개발길이 막혔고 뒤이어 바이든 정부도 중국에 대해선 강도높은 규제를 이어나갔다. 반도체 산업에선 특히 첨단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거의 10년에 걸친 규제 상황 속에서 중국은 범용(레거시) 반도체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도 나름대로 이어오는 가운데 범용 시장은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속적으로 쏟아부어 지원하는 방식으로 D램은 창신메모리(CXMT), 낸드플래시는 양쯔메모리(YMTC),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SMIC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을 육성했다.

    그 중에서도 CXMT는 한국 천하였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D램 시장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의 생산능력(CAPA)을 거의 따라잡은데 이어 올해는 연내에 CXMT의 생산능력이 마이크론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노무라 증권은 CXMT에 대해 "미국 정부의 영향력 있는 추가 제재가 없다면 D램 3강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비트 기준)은 감소할 것"이라며 "삼성전자 30% 후반, SK하이닉스 20% 후반, 마이크론 10% 후반대에 이어 CXMT가 10%를 차지하는 구도로 나뉘어질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미 메모리 시장에선 CXMT가 물량과 가격 공세에 나서면서 DDR4 같은 제품군에선 삼성과 SK하이닉스도 실적에 타격이 있다는 걸 인정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시장 기대치를 하회하는 반도체 실적을 내면서 "메모리 사업에서 서버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견조했음에도 중국 메모리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이 증가한 영향을 받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삼성,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운영 중인 반도체 생산공장이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서 가동률을 높이기 어렵다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지난 2022년 10월부터 미국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공급하지 못하는 수출 통제가 시행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은 일부 첨단 장비 반입을 제한받고 있다. 미 상무부가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허가를 내려 아직까지 큰 타격은 없었지만 중국 생산공장 활용도를 높일 방안이 막히고 점진적인 철수 가능성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