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메모리 비중 '한자릿수'로기존 라인 선단공정 전환 가속화삼성 범용 비중 70%… 묘수 나올까
  • ▲ SK하이닉스 HBM3E 전시 모습 ⓒ이가영 기자
    ▲ SK하이닉스 HBM3E 전시 모습 ⓒ이가영 기자
    SK하이닉스가 올해 침체에 빠진 범용(레거시) 메모리 비중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주문이 밀려드는 HBM(고대역폭메모리)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새로 짰다.

    올 상반기까진 수요 부진과 중국업체들의 물량, 가격 공세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범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삼성전자가 어떤 탈출구를 찾을지 관심이 쏠린다.

    24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전날 실적발표를 진행한 SK하이닉스는 올해 범용 메모리 매출 비중을 한자릿 수로 크게 축소할 계획을 밝혔다. DDR4와 LPDDR4 등 제품의 매출 비중은 지난해 기준 20% 수준이었지만 이를 크게 낮추는 셈이다.

    범용 메모리 시장은 지난해 수요 감소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좀처럼 반등할 계기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이어왔다. 전통적인 범용 메모리 수요처인 PC와 스마트폰, IT기기 교체 수요가 많지 않은데다 AI(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신제품 출시도 예상보다 더뎌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했다.

    여기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창신메모리(CXMT)를 중심으로 중국 메모리업체들이 시장에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등 자국 수요를 중심으로 조용히 성장을 이어오던 CXMT가 지난해 생산능력(CAPA)을 크게 키우면서 메모리 시장 빅3인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실적에도 영향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실적발표 이후 '반성문'까지 내놨을 정도로 범용 메모리 사업 타격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업계에선 지난해 4분기에도 범용 수요는 늘지 않았는데 중국 제품의 장악력이 더 커지면서 3분기와 비슷하거나 더 큰 손해가 불가피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술적으로 봐도 중국 제품의 경쟁력이 뒤지지 않고 가성비를 생각하면 이미 고객들의 선택이 많이 기울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HBM이나 DDR5 같은 고부가 제품으로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지난해부터 범용 생산라인 일부를 고부가 제품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한창이고 올해는 이 같은 작업에 더 투자하고 속도를 낸다는 방침을 세웠다.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판단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HBM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인한 덕분이다. 업계 최초로 5세대 HBM인 'HBM3E' 8단 제품을 AI반도체 시장 최대 큰 손인 엔비디아에 공급하는데 성공한 데 이어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선 글로벌 빅테크들도 SK하이닉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지난해까지 완판 신화를 이어왔다.

    올해는 더 큰 폭으로 AI 시장이 성장하면서 HBM 판매도 성장가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도 SK하이닉스가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결정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전날 실적발표에 이은 컨퍼런스콜에서 "HBM, DDR5 같은 고성능·고사양 제품은 수요 증가로 수급이 타이트한 반면, DDR4와 LPDDR4 같은 레거시 제품은 수요 감소가 가속화하면서 제품별 수요 '디커플링' 양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하며 "HBM 매출은 올해 100%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삼성전자
    ▲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모습 ⓒ삼성전자
    문제는 범용 매출 의존도가 높은 삼성이 앞으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범용 제품 비중이 70% 안팎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 보고, 일부 잘 나가는 범용 제품 의존도가 높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하는 제품 비중을 한자릿 수로 줄이겠다는 SK하이닉스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삼성도 범용 시장 대응 관련해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중국업체들의 공격적인 판매 확대 현실에 대해선 우려와 동시에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아직은 캐파나 점유율 차이 등이 월등히 나는 상황이라 이와 관련한 구체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시장 기대치를 하회하는 실적을 낸 삼성 입장에선 올해 범용 시장 대응 전략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된다. 올해도 짧으면 상반기, 길면 연내 지속적으로 범용시장이 되살아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중국발 가격경쟁이 더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지난 8일 잠정실적 발표를 통해 지난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5조 원, 6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앞서 증권가의 예상치였던 8조 원대 영업이익 수준에 크게 못 미친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부문에서 지난해 4분기에 2조 원대 이익을 내는데 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메모리 사업에선 5조 원 안팎의 이익을 내고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등 비메모리서 2조 원 안팎의 적자를 냈을 것이란 분석이다.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범용 메모리 타격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는 31일 지난해 실적발표와 컨퍼런스콜을 진행하는 삼성전자가 범용 시장에서의 위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에 나설지 주목된다. 시장에선 이미 여기에 대한 의문이 많은 상태라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압도적인 점유율로 범용 메모리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의 전략적 태도 변화가 올해 범용 시장 가격을 움직일 중요한 변수로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