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사건 2심 판결에 의료계 공분"환자 살리려는 응급의료가 설명의무보다 우선"드라마 속 사명감 갖다간 소송 위험에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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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스틸컷. ⓒ넷플릭스
"환자를 살리는 게 우선이 아니냐"는 명분 아래 보호자의 거부에도 응급수술에 돌입한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장면과 달리 현실에선 의사가 범죄자가 되는 현실인 것으로 나타났다.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A씨 사건과 관련 2심 재판에서 '가해자와 함께 의사와 대학병원이 총 4억4400여 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의료 과실과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 역시 재판부에서 인정됐다.여기서 설명의무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응급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사법부의 판결은 방어적 대응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는 "응급 환자를 볼 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응급의료가 우선이지 설명 의무가 우선이 아니다"라며 "응급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응급의료를 시행한 것은 불법이 아니며 과오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현행법상 응급 환자의 경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9조(응급의료의 설명·동의)에 의해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응급의료가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 설명, 동의 의무를 제외하고 있다.동법 시행규칙 제3조(응급의료에 관한 설명·동의의 내용 및 절차)에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응급환자의 법정대리인으로부터 동의를 얻지 못했으나 반드시 응급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의료인 1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응급의료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를 근거로 중중외상센터 4화에서 주인공 백강혁은 보호자의 강력한 거부에도 본인과 펠로우의 동의를 얻어 심장파열 관련 수술을 진행하는 내용이 나온다. 수술 과정서 수술용 장갑을 덧대 출혈을 막는 행위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판타지이지만, 수술 직전은 장면은 현실적이다.그러나 의사가 가해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된 이번 재판 결과는 응급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의 사명감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중론이다.실제 사건은 경막외 뇌출혈(epidural hemorrhage, EDH)로 인해 응급 수술이 결정됐고 전신 마취를 하고 내경정맥(속목정맥)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한 사례다.경막외 뇌출혈은 신경외과 영역에서 응급 수술을 필요로 한다. 혈종이 뇌간 부위를 압박하여 짧은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 시 수혈이나 수액, 약물 투여를 위해 시행한 내경정맥 중심정맥관 시술이 이뤄진다.내경정맥과 내경동맥은 같이 주행하므로 시술 시에 내경동맥이 주사침에 관통되거나 내경동맥으로 도관이 삽입되기도 하는데 해당 시술 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다. 대부분 주사침이나 도관 제거 후, 해당 부위 직접 압박으로 지혈이 된다.응급의학회는 "중심정맥관 시술 시 발생한 내경동맥 1~2㎜ 가량의 관통으로 발생한 출혈이 과연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경막외 뇌출혈 사망의 과실로 책임을 나눌 만큼의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이어 "응급 환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신속히 시행돼야 할 중심정맥관 시술과 같은 응급의료 행위가 줄지 않을까 우련된다"며 "당장 형사 처벌 면제, 민사 배상 최고액 제한과 같은 법률적,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드라마에서 강조된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사의 사명감'만은 현실에서도 동일하지만 정작 소송 부담에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