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고위험층' 모델에선 13兆 추가 투입으로 594만 가구 혜택"36개 복지제도 통합·연계시 효과 극대화 … 선순환 안전망 구축"서울시 정합성 연구결과 발표 … 오세훈 "선제 지원·회복탄력성 높여야"
  • ▲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시청에서 열린 '디딤돌소득 K-복지 비전 발표 및 공동연구 업무협약식'에서 K-복지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시청에서 열린 '디딤돌소득 K-복지 비전 발표 및 공동연구 업무협약식'에서 K-복지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50대 일용직 근로자 A씨는 지병이 악화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됐으나 생계급여 수급권자가 되지 못했다. 유일한 자산인 낡은 빌라(3억 원)가 소득(월 609만 원)으로 환산돼 수급기준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지 않는 디딤돌소득을 적용하면 기준중위소득 85% 이하 가구에 해당해 월 259만10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을 덜고 건강을 되찾아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서울시의 약자동행 정책이자 소득보장 복지실험인 '디딤돌소득(옛 안심소득)'을 전국으로 확산하면 36조6000억 원의 추가 재원 투입으로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선제적인 복지 혜택을 누릴 것으로 분석됐다.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등 36개 현행 복지제도를 통합·연계하면 더욱 효율적인 복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3년여간 소득실험 결과 31.1% 근로소득↑, 탈수급률 8.6%

    서울시의 디딤돌소득은 지난 2022년 시작해 올해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기준중위소득 85% 이하(재산 3억2600만 원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소득보다 부족한 가계소득 일정분을 채워주는 제도다.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형으로, 전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 다르다. 소득과 재산 기준만으로 참여 가구를 선정해 제도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 가구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소득 기준을 초과해도 수급 자격이 유지되는 게 특징이다. 현재 서울시는 총 2076가구에 디딤돌 소득을 지급한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3년여간의 소득 실험 결과 기준중위소득이 85% 이상이어서 더는 디딤돌소득을 받지 않아도 되는 탈(脫)수급 비율은 8.6%로 나타났다. 1년 새 3.8%포인트(p) 올랐다.

    지원받은 가구의 31.1%는 근로소득이 늘었다. 수급 자격 박탈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한 결과로 풀이된다.

    일을 하지 않는 '비(非)근로가구'의 근로유인 효과도 관찰됐다. 일을 하지 않는 가구 중 디딤돌소득 수령 후 근로를 시작한 비율은 비교가구 대비 3.6%p나 높았다.

    또한 디딤돌소득을 받은 가구는 지원금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와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구는 늘어난 소득으로 일하는 시간은 조금 줄이되 그 시간을 돌봄에 할애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구주가 여성인 경우 이런 경향이 더 컸다. 디딤돌소득이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돌봄이 부족했던 가구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 ▲ 현행 복지제도와 디딤돌소득 비교.ⓒ서울시
    ▲ 현행 복지제도와 디딤돌소득 비교.ⓒ서울시
    ◇'빈곤고위험층' 지원에 13兆 추가로 필요 … 기존 제도 통합·연계시 효율성↑

    서울시는 지난해 3월 디딤돌소득의 전국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고, 이날 정합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서울복지재단이 총괄하고 사회복지, 경제, 재정 분야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가 맡았다.

    연구팀은 정책대상을 현행 복지 기준인 기준중위소득 32% 이하 빈곤층에 비해 소득수준은 약간 높지만, 빈곤 위험과 불안도가 높은 대상까지 확대해 선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기준중위소득 65% 이하 '빈곤고위험층' 대상 모델은 현행 생계급여와 유사한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면서도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 무능력 입증, 재산의 소득환산 등 복잡한 절차와 엄격한 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현행 생계급여는 소득 발생 시 자격이 박탈되나 디딤돌소득은 기준중위소득 65%와 가구소득 간 차액의 50%를 지원해 보장대상이 넓다.

    이 모델 적용 시 전국 총 2207만 가구의 27%쯤인 594만 가구가 디딤돌소득을 받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자활급여, 국민취업지원제도, 지방자치단체 부가급여 등 10개 제도에 대한 통합이 필요하다고 봤다. 13조 원쯤의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했다.

    두 번째 모델은 국가긴급복지 기준선 이하 소득층인 기준중위소득 75% 이하 '빈곤위험층'까지 포괄하는 방안이다. 실직, 폐업 등 특정 위기 상황에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현행방식과 달리 빈곤에 준하는 생활을 하는 계층을 보호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 적용 시 전국 가구의 30%쯤인 653만 가구가 지원을 받을 것으로 추정됐다. 23조9000억 원의 재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세 번째 모델은 현행 시범사업과 같이 기준중위소득 85% 이하 '저소득 불안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지원받는 포용적 모델이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됐으나 급격한 소득변화 등으로 경제적 불안도가 높은 계층을 지원하는 안이다.

    이 모델 적용 시 소득하락에 대한 불안이 해소돼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자기실현 지원이 가능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까지 통합 가능할 것으로 본다. 보장 수준이 기준중위소득 42.5%(2024년 1인 가구 기준 월 최대 95만 원)까지 확대돼 36조6000억 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디딤돌소득과 약 95종 복지제도의 관계성을 살펴본 결과, 유사한 생계급여·자활급여·국민취업지원제도(1유형) 등은 통합하고 기초연금 등은 연계하는 등 36개 복지제도를 통합·연계하면 더 효율적인 복지체계를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공공부조와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보육·노인돌봄 등 사회서비스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선순환 안전망을 구축하면 소득지원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는 디딤돌소득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모델 개발하고, 디딤돌소득-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구축방안, 근로유인 제고 방안, 복지재원 확보방안을 연구할 계획이다.

    지자체 맞춤형 실행모델도 개발한다. 가령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지역은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모델을, 근로연령층 비율이 높거나 일자리가 많은 지역은 근로소득공제율을 높인 모델을 적용하는 식이다.

    오세훈 시장은 "디딤돌소득은 현 제도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빈곤 위험층 등 신(新)정책 대상을 포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어렵고 소외된 국민에게 힘이 되는 복지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이날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한국경제학회, 한국노동경제학회, 한국재정학회, 안심소득학회, 서울시복지재단, 서울연구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소득보장제도의 사각지대 보완, 미래소득 보장제도 연구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