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교육물가 2.9%↑ … 2009년 2월 이후 최대 상승폭사립대 '도미노 인상'에 16년째 이어진 동결 기조 깨져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내년 국공립대도 연쇄 인상 가능성법정 등록금인상 상한선, 새 정부 출범 초기 정책기조 관건
  • ▲ 대학 등록금고지서.ⓒ연합뉴스
    ▲ 대학 등록금고지서.ⓒ연합뉴스
    소비자물가가 석 달 연속 2%대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교육 물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라 가계부담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 유도로 16년간 묶였던 대학 등록금이 사립대를 중심으로 인상되면서 내년에는 다수의 국·공립대까지도 도미노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4년제大 131개교 올해 신학기 등록금 올려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지난달 교육 물가(지출목적별 분류)는 1년 전보다 2.9% 상승했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4.8%) 이후 16년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1%를 크게 웃돌며 물가 상승 폭을 키웠다.

    교육 물가 상승은 대학 등록금이 견인했다. 공공서비스 물가 중 사립대 납부금은 1년 전보다 5.2% 올랐다. 2009년 2월(7.1%)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국·공립대 납부금은 1.0% 올라 2022년 2월(2.1%) 이후 3년1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 현재 국내 4년제 사립대 151곳 중 120곳(79.5%)이 등록금을 올리기로 했다. 수도권 사립대만 보면 10곳 중 9곳이 인상을 단행했다. 국·공립대 39곳 중 11곳(28.2%)도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등록금을 올린 131개 대학의 인상률은 4.00~4.99%가 57곳(43.5%)으로 가장 많았다.

    대학 등록금 인상 여파는 다른 교육 물가에도 미쳤다. 사립대학원 납부금은 3.4%, 국·공립대학원 납부금은 2.3% 각각 올랐다. 모두 2009년 2월(사립대 6.5%, 국·공립대 7.8%) 이후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3월 전문대학 납부금도 3.9% 올랐다. 2009년 2월(7.6%) 이후 최대폭이다.

    유치원 납부금도 4.3% 상승했다. 2016년 2월(8.4%) 이후 9년1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이다. 다만 유치원 납부금은 지방자치단체 학비 지원 정책 등으로 말미암아 지역별 편차가 컸다. 전남(24.3%), 강원(15.7%), 부산(14.7%), 서울(5.0%) 등에서 크게 상승한 반면 울산(-74.3%), 충북(-5.7%), 광주(-0.4%) 등에선 내렸다.

    가정학습지 물가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1%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1996년 12월(12.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이러닝이용료도 올 들어 3개월 연속 9.4% 상승률을 나타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5년 1월 이후 최대폭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

    3월 초등학생 학원비(2.0%)·중학생 학원비(1.2%)·고등학생 학원비(1.0%) 상승률은 전체 물가상승률(2.1%)보다는 낮은 수준이었다. 음악(2.2%)·미술(2.9%)·운동(3.9%) 등 예체능 학원비는 상승률이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내년에도 대학 등록금을 필두로 교육 물가 인상이 물가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16년째 이어지던 대학 등록금 동결 기조가 무너진 만큼 올해 인상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사립과 국·공립대학의 연쇄 인상 가능성이 제기된다.
  • ▲ 서울지역 사립대 등록금 인상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 서울지역 사립대 등록금 인상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대학 경쟁력 약화 우려 목소리 커

    대학 등록금은 지난 2000~2008년 연평균 6.7% 인상됐다. 서민 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데다 그동안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는 손쉬운 방법으로 재정을 확보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치권에서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왔고, 교육부는 2009년부터 각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권고했다. 2012년부턴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을 국가장학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동결을 강제해 왔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와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시설 투자나 교수 채용 등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학이 늘어났고, 이는 대학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등록금 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제8차 대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온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대학 경쟁력 약화의 원인은 대학의 열악한 재정, 교육부의 과도한 통제, 혁신 없이 안주하는 대학 등 크게 세 가지"라며 "이 원인을 해결하려면 대학 등록금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박 교수는 "현재는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면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지원받지 못해 등록금이 16년째 동결돼 왔다"며 "이는 대학교육과 연구의 질 저하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재정 위기에 처한 대학들이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는 것보다 법정 상한 내에서 등록금을 올려받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하면서 몇 년 전부터 지방사립대를 중심으로 등록금 동결 기조가 깨졌다. 올해 법정 상한선은 5.49%였다.

    대학 등록금 인상 분위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립대도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대 총장인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은 지난달 제29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16년간 등록금이 동결돼 대학의 재정 상황이 극도로 어렵다"면서 등록금 규제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등록금 인상 법정 상한선이 내년에도 내릴 수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거라는 의견도 있다. 고등교육법상 등록금은 최근 3년간 물가상승률 평균의 1.5배를 넘어 올릴 수 없다. 법정 상한선은 2023년 4.05%에서 지난해 5.64%로 뛰었다가 올해 5.49%로 하락했다.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과 국가장학금 지원을 놓고 주판알을 튕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조기 대통령선거로 오는 6월께 출범할 새 정부의 대학 정책 기조도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 판단에 영향을 끼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초기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거는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을 어떻게 내놓을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