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9억원 횡령' 경남은행 전 간부, 징역 35년 확정'김치통·골드바·강남 빌라' 총 동원"한 사람 일탈이 조직 위기로…내부통제 리스크 드러낸 경남銀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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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DB.
    금융권 역대 최대 규모의 횡령 사건으로 기록된 'BNK경남은행 3000억원 횡령 사건'의 주범에게 대법원이 징역 35년형을 확정했다. 

    김치통에 현금을 숨기고, 수백억원을 호화생활에 탕진한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 전반의 구멍을 드러낸 사례로 남았다.

    ◇내부통제 구멍 … 14년간 '몰랐다'는 경남은행

    3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 씨에게 징역 35년형을 확정했다. 다만, 추징금 159억원은 압수된 금괴의 시세를 다시 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일부 파기환송됐다.

    이 씨는 2008년부터 2022년까지 14년에 걸쳐 총 3089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단일 사건으로는 금융권 최대 규모로, 경남은행 자기자본(약 3조6490억원)의 8%를 넘는 금액이었다. 그는 공범인 증권사 직원과 공모해 시행사 명의의 출금전표를 위조하고,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자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송금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횡령했다.

    횡령 자금은 주식, 선물, 옵션 등 고위험 투자에 사용됐고, 나머지는 사치 생활로 이어졌다.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고급 빌라(구입가 83억원)에 거주하며 월 평균 7000만 원 이상을 생활비로 사용했다. 명품 구매와 고급 골프장·피트니스 회원권, 자녀 유학비 등에도 자금이 쓰였고, 금괴·현금·상품권 등 130억 원 상당의 자산은 차명 오피스텔 세 곳에 은닉했다.

    수사 과정에서 가족들의 조직적 가담 정황도 드러났다. 친형은 44억원을 현금화하고 은닉 자산이 숨겨진 오피스텔을 관리했으며, 부인은 수표로 인출한 자금을 비닐봉지에 담아 김치통에 숨기기도 했다. 이 씨 가족을 포함한 공범 7명 전원에게 실형이 선고됐고, 친형과 아내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금융당국은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경남은행에 6개월 일부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으며, 관련 임직원들도 정직 및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사건이 14년 동안 장기간 지속된 데다, 수천억원의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기까지 은행 내부 감사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남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개인 일탈 아닌 시스템 붕괴…금융권에 남은 뼈아픈 교훈

    앞서 금융감독원은 2023년 ‘경남은행 횡령사고에 대한 검사 결과’를 통해 BNK금융지주와 경남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이번 거액 횡령사고는 BNK금융지주와 경남은행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기인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BNK금융지주는 자회사인 경남은행에 대한 내부 점검을 실시하면서도 고위험 업무인 PF 대출 취급 및 관리 부문은 제외해 핵심 리스크를 방치했다. 사고 인지 이후에도 경남은행은 4월 초 횡령 사실을 파악했음에도 자체 조사를 이유로 금융감독원 보고를 미뤘고, BNK금융지주는 같은 시점에 내용을 인지하고도 7월 말에서야 자체 검사에 착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검사에서는 PF 대출 관련 내부통제 절차 미흡도 주요 문제로 지목됐다. 대출금을 지급할 때 차주 명의 계좌만 사용하도록 하는 내부 규정이 없었고, 원리금 상환 시에도 별다른 입금 통제 장치가 없었다. 차주에게 대출 실행 또는 상환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 이 씨가 무단 개설한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며 장기간 범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씨는 15년간 같은 부서에서 PF대출 업무를 전담하면서 사후관리까지 직접 맡아, 직무 분리 원칙이 무시된 채 고위험 업무를 장기적으로 독점했다. '명령휴가' 같은 사고 예방 장치도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았고, 내부 감사 역시 부실하거나 아예 누락되어 장기 횡령을 차단하지 못했다.

    대법원 판결로 형량이 확정되며 법적 판단은 마무리됐지만, 사건이 금융권에 남긴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닌,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남은행발 횡령 사태'는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한 사람의 일탈이 전사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