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13% 급등… 뉴욕 선물가 사상 최고치구리 수입품에 50% 관세 예고… 시장 '패닉 랠리'"원자재 리스크에 슈퍼사이클 무색"… 업계 우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글로벌 경기 회복과 인프라 투자 확대 흐름 속에서 슈퍼사이클 기대감이 커지던 전력기기·전선 업계의 원가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리 수입품에 대해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국제 구리값이 폭등하면서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구리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5.65달러를 기록하며 하루 새 13% 가까이 급등했다. 이는 1969년 이후 가장 큰 일일 상승폭이자 사상 최고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리 제품에 대해 최대 50%의 수입 관세를 예고한 것이 직접적인 촉매가 됐다. 시장은 이를 '트럼프발 패닉 랠리'로 평가하며, 향후 실제 관세 부과 여부와 시점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 및 전선 업계는 구리값 변동에 민감한 구조다. 변압기 한 대에는 통상 510톤의 구리가 사용되며, 초고압 전력설비, 산업용 배전반, 케이블 등에 이르기까지 구리는 핵심 도전재(導電材)로 쓰인다. 여기에 전선업계가 주력으로 생산하는 가공선, 지중선, 초고압 케이블은 제품 원가 중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60~80%에 달한다. 

    한국전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선산업의 2024년 전체 수출액은 약 32억달러로 이 중 미국 시장 비중은 약 15% 수준이다. 

    전력기기업계의 미국향 수출도 매년 증가 추세다.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이 미 시장 수주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최근까지 '에너지 고효율화' 및 '노후 전력망 교체' 정책에 발맞춰 산업계 전반의 수출 확대 흐름을 뒷받침해 왔다. 

    특히 북미 시장은 인공지능(AI) 확대에 따른 데이터센터 구축, 기후 위기에 따른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EV(전기차) 충전망 구축 등으로 중장기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핵심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낙관적 흐름 속에 구리값 급등이 변수가 됐다는 점이다. 

    한 전력기기 업체 관계자는 "올해 수출 전망이 높았는데 구리값 급등이 계속된다면 단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며 "장기 계약의 경우 원가 인상분을 가격에 반영하는 데 구조적 제약이 있어 채산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전력기기업계는 지난해부터 노후 송배전망 교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 등에 힘입어 실적 개선을 이어왔다. 일부 기업은 생산설비 증설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이번 구리값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수익성 악화는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전선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전선은 수주 시점부터 납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며, 발주처와 체결한 고정단가 계약이 대부분이라 구리값이 갑자기 오르면 사실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리 관세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향 수출 단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경쟁 제품이나 현지 조달 제품 대비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 업계는 향후 미 행정부와의 관세협상에 따라 전략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구리 정제 능력이 부족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데, 자국 산업 보호 명분으로 고율 관세를 밀어붙인다면 오히려 글로벌 공급망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슈퍼사이클이라던 전선·전력기기 산업의 기대가 꺾이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구리값 급등에 따른 산업계 영향을 모니터링 중이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공식적으로 시행될 경우 대미 수출품의 관세 회피 전략이나 현지 생산 확대 여부 등을 포함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