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틀어막히자 쌓인 재고 실적 리스크로美 향하던 철강에 고율 관세 추가로 붙기도불확실성에 비축도 부담… 생산 타격 불가피관세 유예로 비축분 소진 … 재고 늘리긴 부담삼성·LG, 2분기 어닝쇼크, 현대차, 美 재고 바닥정유업계 역래깅 사태까지… 생산·수출 다변화 한계
  •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현대차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현대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전쟁의 전선을 전방위로 확대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 확보해둔 재고 물량의 소진이 임박한 가운데 하반기 수요도 불확실한 탓이다. 수익성을 고려하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 당분간 비상 체제 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 ◇관세 효과 본격화 … 재고 늘리기엔 하반기 수요 불투명 

    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8월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달 말에는 반도체 등의 품목별 관세 부과도 유력하다. 구체적인 관세율이나 관세 부과 시점 등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조사가 끝나는 이달 말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관세 전운이 본격 드리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은 재고관리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관세 시행 유예기간이 길어지면서 선제적으로 쌓아둔 2~3개월치 재고의 소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미국에 추가적으로 제품을 수출해 대량의 재고를 비축해두기에는 하반기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둔화와 관세 영향으로 인한 수요 부진이 우려돼서다. 팔리지 않는 제품을 쌓아두는 경우 이에 따른 물류비, 운송비, 창고비 등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결국 재고 소진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다. 수요 둔화가 우려되는데, 가격까지 인상하는 경우 하반기 매출이 크게 줄어들 수 있어서다. 미국에 생산시설이 있는 기업들은 현지 생산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눈치를 살피며 재고관리에 사활을 걸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일부 기업들은 현지 위탁 생산이 가능한 협력사를 찾거나 중장기적으로 미국 생산시설 보유한 회사를 인수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트럼프 정부 이후 관세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지속되는 정책 불확실성은 재고 관리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상호관세가 유예됐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언제 어떤 품목에 관세가 붙을지 불확실성이 커 재고는 물론 중장기 경영계획을 짜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마냥 미국 현지에 재고를 비축해두기에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1분기 관세 선수요로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었지만 하반기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섣불리 제품을 쌓아두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 ▲ 미국의 가전 매장. ⓒAFP연합뉴스
    ▲ 미국의 가전 매장. ⓒAFP연합뉴스
    ◇재고 소진 임박한데 현지 생산 제한적 … 산업계, 전방위 악영향 불가피

    반도체·전자업계의 경우 2분기 실적부터 관세 여파가 본격화한 모습이다. LG전자는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20조7400억원, 영업이익 6391억원의 잠정실적을 지난 7일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4.4% 줄었고, 영업이익은 46.6% 감소하며 반토막이 났다. 삼성전자도 2분기 매출액 74조원, 영업이익 4조6000억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0.09%, 영업이익은 55.94% 줄었다. 

    양사의 어닝쇼크는 주력사업의 소비심리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미국 통상정책 변화로 인한 관세 비용 부담, 시장 내 경쟁 심화 등이 반영된 결과다. 대미(對美) 보편관세 및 철강·알루미늄 파생관세와 물류비 등 비용 증가분도 수익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전자업계도 사전에 재고를 비축하고 현지 생산을 늘리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미국 현지 생산은 세탁기 등 일부 제품에 국한돼있고, 주요 제품은 한국, 멕시코, 베트남 등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지난 4월 모든 수입차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5월부터는 자동차부품에도 25%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현지 재고 물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미국 생산을 확대하며 관세에 대응해왔다. 그러나 기존에 확보했던 비관세 재고는 거의 바닥난 상태다. 

    현대차는 지난 4월 1분기 실적 컨퍼런스에서 미국 내 재고 물량이 완성차 기준 3개월 가량 남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달 중순부터는 재고가 완전히 바닥나게 되는 셈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여기에 현지 수요를 감당할 생산 능력이 충분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 증권사들은 현대차와 기아의 2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3조6121억원, 3조8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보다 각각 15.6%, 15.4%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유업계 역시 ‘역래깅(lagging)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상 정유사는 원유를 들여와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해 이를 반영한 래깅마진을 기준으로 수익성을 평가한다. 유가가 급락하면 정유사는 고가에 구매한 원유로 제품을 생산한 뒤 저가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유가는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가 하락할 때 판매 시점의 재고 단가가 높게 책정되면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손실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정유사들의 경우 유가가 저렴할 때 사서 비축하는게 이익이지만 언제 유가가 하락할지 반등할지 시점을 예단할 수 없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강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6월 트럼프 정부가 철강제품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한 탓이다. 관세율이 25%일 때는 관세 부담에도 미국 제품보다 가격이 낮아 버틸 수 있었지만 50%로 오르면 미국산보다 비슷하거나 높아졌다. 특히 세율 인상이 발표 닷새 만에 시행돼 재고를 쌓아둘 여유도 없었다는 게 철강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배에 선적돼 미국으로 향하던 철강 제품에도 고율의 관세가 붙게되면서 추가 부담해야 할 관세만 연간 수천억원 수준으로 점치고 있다. 

    김규원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상호관세로 인한 대미 수출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기업 차원에서는 생산 거점을 다양화하고 생산 비용을 절감해 과세 기준가격을 낮추는 한편, 미국 내 생산이 어렵거나 대체 가능성이 낮은 품목으로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