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주체 두고 금융위·한은 충돌 … 핀테크도 이해 엇갈려정부 입법 지연에 업계 혼란 … 자본금 요건·실명제도 빠져'금융감독체계 개편'도 장애물로 작용…정책 연속성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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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스테이블코인 감독 체계를 둘러싼 정책 혼선이 심화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둘러싸고 국회, 정부, 관련 업계가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입법 시계가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인허가 권한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충돌하고, 의원안 간에도 방향성이 엇갈리면서 ‘누가 시장을 감독할 것인가’라는 기본적 질문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여야 간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고, 정부 입법도 제자리걸음 상태다. 민 의원안은 금융위원회를 감독·인가 주체로 명시했지만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운영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차상진 은행법학회 총무이사(변호사)는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행정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인허가 권한을 부여하는 건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일부 영미권(미국)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국내 제도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입법을 둘러싼 업권 간 충돌도 발목을 잡고 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핀테크 업계와 함께 준비 중인 별도 법안은 스타트업, 전통 금융사, 지급결제업체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발의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 조문 축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산업협회는 법정 협회가 아니기 때문에 법안 조율 주체로서 한계가 분명하다”며 “지급결제나 선불수단 관련 조항이 포함될 경우 기존 금융권과의 충돌로 입법 통과 가능성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회에서도 법안 발의가 지연되면서 정부 입법 역시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시장의 기본 질서만이라도 정비하기 위한 ‘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먼저 정리돼야 방향성이 잡힌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명확인 빠진 채 ‘자본금’ 설정 … 제도설계 미흡

    법안 내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민 의원안은 사업자의 자기자본 기준을 5억원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업권별 특성과 리스크 수준에 따라 자본금 요건을 달리하거나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정기획위원회는 백서 공시, 회계·법률 검토 등 민간 전문가에 의한 사전심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또한 금융소비자보호법과 금융실명법의 적용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법안은 금소법 적용을 배제한 채 설명의무만 규정하고 있어 실명 확인 없는 가상자산 계좌가 무분별하게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은 실시간 거래 추적이 어려운 만큼 수사기관과 감독당국이 긴급히 거래내역에 접근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영장주의 예외, 지급정지권 부여 등도 제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지연 … “정부안부터 정비해야”

    입법 지연의 배경에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이라는 더 큰 장애물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세종 이전과 조직 축소 등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있으며, 사무관급 이탈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정책 연속성에도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업계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시장의 최소 질서를 위한 ‘골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지만 현행 금융 법체계와의 정합성 정비가 우선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차상진 변호사는 “혁신과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최소한의 진입 규제와 감독 장치를 마련해야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정부가 뒤늦게 대응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만 뒤처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