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한방에 SK하이닉스 주가 9% 넘게 폭락내년 HBM 가격 두자릿 수 폭락 전망 믿을 수 있나'반도체 겨울' 패턴과 유사… 외인 투기 전략 일 수도HBM 수요 이미 공급 압도… 국면 전환 시도 가능성
  • ▲ SK하이닉스ⓒ뉴데일리DB
    ▲ SK하이닉스ⓒ뉴데일리DB
    SK하이닉스 주가가 17일 장중 한때 9% 넘게 급락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원인은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보고서였다. '2026년에는 HBM 과속방지턱(HBM speed bump in 2026)' 제목의 보고서는 SK하이닉스의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하고, 2026년 HBM(고대역폭메모리) 가격이 처음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공급 구조나 수요 환경에 대한 현실 반영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HBM 수요, 공급을 장기간 초과할 것”

    반도체 업계에서는 현재 HBM 가격은 수요 폭증에 따른 공급 병목이 가격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HBM은 GPU(그래픽처리장치)와 고성능 컴퓨팅 서버, AI 데이터센터의 필수 부품으로 자리잡았으며, 엔비디아와 AMD,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의 수요가 연달아 확대되고 있다.

    한 국내 반도체 전문가는 "HBM의 최대 난점은 생산량 확대가 매우 더디다는 점"이라며 "공정 복잡도와 수율 이슈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최소한 2027년까지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4세대 HBM(HBM3E)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하반기 출시하는 루빈에 탑재되는 HBM4에서는 그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공급 우위 구도는 더욱 굳어질 공산이 크다. 변수라면 삼성전자가 차세대 D램(1C)을 기반으로 하는 HBM4 개발에 성공해 가격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 정도다.

    가격 결정력, 여전히 공급자 우위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가 의존하는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가격결정력을 점점 가져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너무 나간 얘기"라는 반응이다.

    한 글로벌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다양한 HBM 공급선을 확보하려 하고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고성능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정도에 그친다"며 "그 중에서도 SK하이닉스의 수율과 성능이 시장 기준을 선도하고 있어, 오히려 고객사들이 줄을 서서 구매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AI GPU의 고성능화를 위해 필수적인 HBM3E 이상급 제품은 SK하이닉스가 독보적으로 선점한 기술력이다. 이 기술의 복잡성으로 인해 신규 진입자나 후발 업체의 경쟁력 확보도 요원한 상태다.
  • ▲ 골드만삭스가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하향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9% 넘게 폭락하기도 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가 하락세를 거듭하는 장면ⓒ연합뉴스
    ▲ 골드만삭스가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하향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9% 넘게 폭락하기도 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코스피가 하락세를 거듭하는 장면ⓒ연합뉴스
    단기 조정, 과도한 반응… 하반기 실적이 입증할 것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9% 안팎 하락한 26만8500원까지 떨어지며 큰 폭 조정을 받았다. 4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그러나 기관투자자와 일부 외국계 증권사는 "펀더멘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한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하이닉스 주가가 연초 대비 70% 넘게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실적 개선과 AI 인프라 수요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반영한 결과였다"며 "중장기적인 가격 동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나증권의 경우 전날 리포트에서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한 부분도 있지만, AI 주도 반도체 사이클에서 수혜 강도가 높은 만큼 비중확대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목표가를 상향했다.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골드만삭스의 보고서가 HBM 시장의 구조적 제약과 기술 장벽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HBM은 일반 D램과 달리 장기간 공급자 우위 시장이 유지되는 고부가가치 품목이라는 점에서, '2026년 가격 하락' 전망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HBM 생산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 난이도, 투자비용, 수율 확보 등 수많은 진입장벽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2027년까지 글로벌 HBM 시장은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은 제한적이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가격 하락보다는 ‘가격 유지 또는 점진적 상승’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모건스탠리가 '반도체의 겨울'이란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겨냥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란 의견도 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해당 보고서 이후 폭락한 SK하이닉스 주식에 투자해 쏠쏠한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 시장이 과도하다 느껴질 정도로 폭발적인 수요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장 주도권에 위협을 느낀 미국 투자자본이 던지는 희망사항이란 인식이 강하다"면서 "엔비디아가 AMD나 중국 업체들의 추격 속에서도 가격 협상권을 놓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