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추정 매출 13.5% → 53.6%로 껑충고객사 관리서 신경전 … 복수 조달 명분 강화 고객 다변화 내세웠지만 … 품목관세 리스크도
  • ▲ 한미반도체 본사 전경.ⓒ연합뉴스
    ▲ 한미반도체 본사 전경.ⓒ연합뉴스
    견조한 실적과 수요 확대에도 올해 들어 한미반도체의 시장 평가가 쉽게 확장되지 않는 배경에는 SK하이닉스의 조달 다변화가 자리한다. SK하이닉스향 TC본더로 입지를 키워왔지만, 모순적이게도 SK하이닉스에 치우친 매출 편중이 독이 돼 돌아온 셈이다. 회사는 미국과 중국 등 고객사 다변화로 치우진 매출을 다변화한다는 구상이지만 반도체 품목관세 등 불확실성이 남아있어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SK하이닉스의 TC본더 발주를 두고 시장에서는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의 물량이 얼마나 갈릴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가 본격화하면서 양사의 수주 물량이 향후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SK하이닉스는 2017년부터 한미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를 위한 TC본더 개발을 함께 진행하는 등 협업을 이어왔다. 이후 인공지능(AI) 시대 개화로 SK하이닉스의 HBM 수요가 폭발하며 한미반도체도 수혜를 함께 누려왔다. 

    한미반도체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로 추정되는 특정 거래처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2023년 215억원에서 지난해 2996억원으로 약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에서 이 거래처의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13.5%에서 53.6%로 크게 확대됐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면서 시장의 우려도 커지기 시작했다. TC본더 매출의 대부분이 SK하이닉스에서 발생한 만큼 복수 공급자의 등장이 한미반도체에 타격을 줄 것이란 관측이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연초 싱가포르 ASMPT에서 장비를 납품받는 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3월과 5월 세 차례에 걸쳐 한화세미텍에 총 805억원 규모의 TC본더를 발주했다. 

    해당 과정에서 한미반도체는 수년간 동결해온 TC본더 가격을 인상했으며, 장비 운용을 위해 SK하이닉스 생산라인에 투입했던 유지·보수 인력을 철수하는 등 도발적인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이후 엔지니어 복귀 보도가 나왔지만, 가격·지원 관련 논란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며 오해려 복수 조달의 명분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SK하이닉스의 공급망 다변화가 상수화되면서 한미반도체는 미국과 중국 등 고객사 다변화로 활로를 찾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홍콩계 증권사 CLSA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올해 SK하이닉스 매출 비중을 40% 대까지 내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정영 한미반도체 최고재무책임자는 최근 실적 발표 설명회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해외 고객사로부터 대규모 주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올해 해외 고객사에서 발생하는 매출액은 지난해 국내 특정 고객사의 매출액의 두 배를 넘길 것으로 전망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올해 들어 한미반도체 내 해외 매출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회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은 90%에 달한다. 지난해 말 해외 매출 비중이 41.3%였던 것을 감안하면 약 2배 늘었다. 업계에서는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의 추가 대(對)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비해 사재기를 한 영향으로 추측하고 있다. TC본더가 HBM 제조의 핵심 장비인만큼 미국이 중국으로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미반도체의 TC본더 수입이 금지될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즉,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한미반도체의 또 다른 핵심 고객사인 마이크론도 변수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4월부터 마이크론에도 TC본더를 공급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마이크론으로 추정되는 대형 고객사로부터 발생한 수익은 1111억원으로 전체 매출 내 비중이 20%에 달한다. 

    마이크론은 미국 본사를 두고, 대만 공장에서 일부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예고된 트럼프식 반도체 품목관세 구조상 미국 기업의 해외 생산분은 고율 관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 단기적으로는 미국향 수출 타격이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과거 수출통제 제도를 통해 미국 기술이 포함된 제품에 대해 생산지가 어디든 규제를 적용한 전례가 있다. 비록 관세 정책과 수출통제는 법적 성격이 다르지만, 트럼프식 통상정책 특성상 예외 범위가 정치·전략적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남아있다. 원산지 판정 기준이 강화되거나 장비·부품 원산지까지 추적하는 방식이 도입될 경우, 중화향으로 향하는 한국산 TC본더를 사용한 제품도 규제 논의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매출 절반 이상이 한 고객사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공급망 변화나 대외환경 악화가 곧 실적 변동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관세나 규제처럼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지속되면 기업가치 변동성이 커지고 주가 역시 민감하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