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R&D 비용 221억원 … 매출 4% 수준 불과핵심지표 준수율 20% … 15개 항목 중 3개만 충족후진적 지배구조 발목 잡을수도… 장기 플랜 안보여
  • ▲ 한미반도체 4공장 전경.ⓒ한미반도체
    ▲ 한미반도체 4공장 전경.ⓒ한미반도체
    한미반도체의 시장 평가가 개선되지 않는 또 다른 요인에는 연구개발(R&D) 등 투자 미흡, 지배 구조의 취약성 등이 자리한다. 가장 큰 매출처인 SK하이닉스 향 수주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장기 경쟁력 근간 지표들도 뒷받침해주지 못하면서 실적 대비 저조한 평가받고 있다는 게 시장의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국내 R&D 투자 상위 1000대 기업 분석 결과’에 한화세미텍은 87위를 차지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R&D 투자로 2023년 507억원, 지난해 678억원을 지출했다. 지난해 매출이 4013억원으로 명기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액의 약 17%를 R&D 비용으로 사용한 셈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적자를 낸 가운데서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장비 사업의 경우 고객 승인이나 레퍼런스 확장이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에 높은 R&D 강도는 향후 수주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해석된다.

    반면 한미반도체는 산업부가 공개한 1000대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업보고서 기준 지난해 한미반도체의 R&D 비용은 221억원으로, 매출의 약 4% 수준에 그쳤다. 

    같은 장비 카테고리의 비교 대상으로 한화세미텍이 대기업 계열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절대·비율 모두에서 차이가 크다. 게다가 중소기업으로 분류되는 시스템 반도체 팹리스 파두가 지난해 648억원을 R&D에 쓴 것을 보면 기술 선점이 곧 밸류인 반도체 생태계에서 200억원대 R&D는 차세대 본더 시장에서 지금과 같은 점유율을 이어가기엔 부족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최근 5년간 한미반도체의 연간 R&D비용은 대체로 200억원 안팎에서 큰 폭의 체증이 없었다. 연도별로 2020년 159억원, 2021년 216억원, 2022년 204억원, 2023년 181억원 수준이다. 매출 대비 비중은 업황·매출 변동에 따라 6% 내외에서 일시적 두 자릿수로 출렁였으나, 금액 절대치가 체계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기술 투자 공백은 지식재산권(IP) 리스크로도 연결됐다. 한미반도체는 현재 한화세미텍과 특허소송 중이다. 지난해 12월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의 TC본더 관련 특허 침해를 이유로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한화세미텍은 “널리 알려진 기술”이라며 무효심판으로 맞서고 있다. 

    결과에 따라 TC본더 공급망과 점유율 재편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시장에서는 기업 가치 평가의 주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허 분쟁의 빈도·수위가 높아질수록 고객사 발주 등 일정도 지연될 수 있다. 일정 지연은 매출 인식 시점·규모를 흔들어 결과적으로 매출 변동성과 기업 가치의 할인율을 키운다.

    기업 가치를 끌어내리는 또 다른 요인은 지배구조 측면에도 존재한다. 한미반도체의 ‘2024년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상 핵심지표 준수율은 15개 항목 중 3개(20%)에 그쳤다. 직전 년도 26.7% 대비 6.7%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그해 자산 5000억원 이상 비금융 상장사 501개사의 평균 준수율 54.4%와 비교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특히 이사회 독립성·다양성 항목에서 미준수 비중이 높았다. 

    경쟁구도로 일컬어지는 한화세미텍의 경우 비상장사여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의무 공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모회사 한화비전의 경우 2024 사업연도 핵심지표 준수율은 46.7%에 달했다. 절대수치로 ‘우수’라 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평균권에 근접해 있는 셈이다. 

    지배구조가 미흡하면 배당·자사주·IR 등 주주환원 정책의 예측가능성이 낮아지고, 이는 자본비용 상승과 할인율 확대로 곧장 연결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장비 업종에서 R&D 절대금액과 매출 대비 비율은 곧 ‘다음 사이클의 점유율’로 해석된다”며 “IP 전략과 고객 퀄 타임라인을 숫자로 관리하는 기업이 멀티플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이 낮으면 기관 편입이 제한되고, 이는 기업의 할인율을 고착화한다”며 “한미반도체가 저평가를 풀려면 R&D 강도를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고, 이사회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시장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준을 빠르게 맞추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 저조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개선된 부분은 내년 상반기 지배구조 보고서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