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형 76.6일 vs 매입형 266.3일 … 금융사 '부동의'가 만든 시간 격차케이뱅크 98%, 카카오뱅크 100% 부동의 … 차주들 9개월간 연체이자 부담
-
- ▲ ⓒ챗GPT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기 위해 출범한 새출발기금이 금융회사들의 ‘부동의’에 막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금융사가 동의하면 평균 76.6일 만에 채무조정이 끝나는 중개형이 가능하지만, 동의하지 않을 경우 매입형으로 전환돼 절차가 266.3일이나 소요된다. 불확실성속에 차주들은 연체이자와 금융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인터넷은행·카드사 ‘사실상 100% 부동의’4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중개형 채무조정에 대한 금융권 전체 부동의율은 65.8%다. 업권별로는 여신금융사(카드사 포함) 86.2%, 보증기관 85.7%로 특히 높았으며, 은행도 61.4% 수준으로 나타났다.지난 2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일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사실상 부동의율이 100%에 근접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케이뱅크가 98%, 카카오뱅크는 100%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이 때문에 상당수 차주가 빠른 조정이 가능한 중개형 대신 장기간 지연되는 매입형 절차로 몰리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차주 입장에서는 중개형이 처리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선호하지만, 금융사들은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매입형이 유리하다”며 “결국 제도 설계와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서 부동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고 말했다.◇왜 금융사는 ‘부동의’를 택하나금융사들이 중개형에 동의하지 않고 부동의를 선택하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먼저 건전성 관리 부담이다. 중개형에 응하면 금융사 회계처리상 채권이 남아 차주가 다시 연체할 경우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반면 부동의 시 매입형으로 전환돼 캠코가 채권을 매입·정리하므로 회계 리스크를 덜 수 있다.둘째는 재무적 유인이다. 매입형으로 전환되면 캠코가 채권을 시장가에 매입해주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장기간 채권을 떠안는 것보다 즉시 회수율을 확보하는 편이 유리하다. 보증기관의 부동의율이 85% 이상으로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셋째 업권 특성이다. 카드사와 인터넷은행은 신용대출 비중이 높고 자체 추심 인프라가 발달해 있다. 이들은 중개형 동의보다는 부동의를 선택해 매입형 전환으로 넘기고, 캠코 매입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일정 기간 자체 회수를 시도한다. 즉 금융사 입장에서는 채무를 감면해 장기간 부담을 떠안기보다는, 단기적으로는 독자적 회수를 시도하고 장기적으로는 캠코 매입으로 정리되는 흐름을 선호하는 셈이다.결국 금융사들의 태도는 “매입형을 적극 선호한다”기보다 “중개형을 피한다”는 쪽에 가깝다. 채무 감면에 따른 손실을 피하면서도 매입형 전환과 자체 추심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새출발기금 제도 설계상 매입형으로 전환되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을 매입·소각하는 과정이 추가돼 평균 190일 이상 더 소요된다. 이 기간 차주들은 최대 9개월 가까이 연체이자와 금융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
- ▲ 2025년 6월 기준ⓒ금융위
◇“제도 취지 퇴색” … 전문가들 개선 촉구전문가들은 새출발기금의 신속성과 실효성이 훼손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한다. △금융사 부동의 사유 공개 △매입형 절차 단축 △강제조정 장치 도입 등이 대안으로 꼽힌다. 또 금융사가 중개형을 선택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반대로 차주가 매입형을 선호할 수 있게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금융당국도 속도 개선에 나섰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채무조정 절차를 효율화하고 채권금융기관의 유인 구조를 재설계하겠다”며 “9월 중 협약 개정을 통해 약정 지연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은행과 카드사 등 일부 업권의 사실상 전면 부동의가 이어진다면 기금의 근본 취지인 신속한 재기 지원은 무색해진다”며 “고금리와 경기둔화로 생존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려면 금융사 협조를 끌어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