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의 기습공격… 남은 건 재무 부담 상처뿐'쩐의 전쟁' 이어 소송만 24건… 여론전도 지속차입금 3조 늘고 부채비율 23%→69% '부메랑'직원들 심리적 불안감 극심… 경쟁력 저하 우려
  •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국내 제련산업의 맏형격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선언으로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끝없는 소모전으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재무구조 악화와 조직 혼란으로 직결됐다. 고려아연은 핵심 전략 광물 공급망을 책임지는 국내 유일 기업으로, 이러한 혼란이 한국 경제와 국가 안보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단 점에서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의 1년의 궤적을 따라 세 편에 걸쳐 고려아연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고자 한다.

    지난해 9월 13일,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며 경영권 분쟁의 막이 올랐다. 추석 연휴를 앞둔 평화로운 금요일 MBK 연합의 ‘기습공격’에 고려아연은 물론 여의도 증권가를 시작으로 산업계 전반이 충격에 빠졌다.

    MBK·영풍 측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작하며 내건 명분은 ‘거버넌스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다. 당시 고려아연 지분 33.13%를 보유해 최대주주였던 영풍은 이를 이유로 막대한 자본을 가진 MBK를 끌어들여 경영권 분쟁을 시작했고, 75년간 이어온 공동경영 체제도 끝이 났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최기호·장병희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한 이후 3대에 걸쳐 동업자 경영을 이어왔다.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아서 이끄는 구조였지만 2022년 고려아연이 최 명예회장 손자인 최윤범 회장 체제를 확립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갈등의 발단에 대해 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각종 유상증자로 우군 지분을 늘리며 동업자 정신을 해쳤다’는 입장인 반면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동업자 정신을 깨고 고려아연에 경영 개입을 시작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씨 일가는 MBK에 지배력과 경영권을 모두 넘기더라도 75년간 이어온 공동경영 시대를 마무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장악 또한 분쟁이 아니라 최대주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라는 입장이다.
  • ▲ (왼쪽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 (왼쪽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고려아연은 즉각 반발했다. 비철금속 제련업에서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추고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와 결타탁해 일방적으로 경영권 찬탈에 나선 것이라 비판하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경영권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경영권 분쟁은 ‘치킨 게임’으로 번졌다. 공개매수 선언 직전 고려아연 주가는 55만6000원이었다. MBK 측은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를 1주당 66만원으로 책정했지만, 경영권 분쟁의 찬반 논쟁이 거세지자 공개매수 참여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75만원으로 올렸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0월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공개매수가를 83만원으로 올려 대항매수에 나섰고, MBK도 83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양측의 ‘쩐의 전쟁’이 격화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89만원으로 매수가를 또 올렸다. 양측은 3조원이 넘는 자금을 공개매수에 투입했다.

    결과적으로 공개매수는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났다. MBK 연합은 공개매수에서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로 확보에 지분율이 38.47%로 확대됐다. 최윤범 회장 측은 오너일가 지분(15.65%)과 우호 지분, 베인캐피탈이 매수한 자사주를 합해 약 36%의 지분율로 박빙이었다. 

    양측 모두 과반의 지분 확보에 실패하며 우호 지분 확보, 7.8%의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 표심을 얻기 위해 여론전에 몰두했다. MBK 측은 최 회장의 투자 결정이 석연치 않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고려아연은 홈플러스 사태와 석포제련소 환경오염 논란을 들어 반격했다.

    소송전도 난무했다. 지난해 9월 MBK 측의 적대적 M&A 이후 발생한 소송은 주총 결의취소 청구, 가처분 신청 등 무려 24건에 이른다. 최근에도 영풍은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 사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대표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이 셋을 고발했다.

    적대적 M&A를 방어하면서 고려아연의 경영환경도 악화했다. 올해 6월 말 별도기준 총차입금은 3조7454억원으로 1년 전 7329억원과 견줘 5배 넘게 급증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22.5%에서 69.2%로 46.7%포인트 급등했다.

    임직원들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극대화했다. 지난해 말 고려아연이 임직원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2.8%(855명)이 ‘지속적인 언론 노출과 주변의 관심 및 우려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심리적 부담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고용불안을 느끼거나 이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59.6%(700명)에 달했다.

    고려아연은 “많은 구성원이 적대적 M&A에 대한 부담감과 고용불안, 이직 고려 등을 경험하면서 회사 경영 안정성과 인적자원 관리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며 “최근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핵심인력의 이탈과 해외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제련분야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