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세 압박 자동차·제약·바이오·철강 업계 비상'3500억 달러’ 선납 갈등에 환율 뛰고 불확실성 확대노란봉투법 앞세운 노조 파업 확산 … 현장 혼란 가중희망퇴직·구조조정 등 비상경영 체제로 기업 대응 본격화
  •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써밋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써밋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한국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여전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한미 관세 협상에 달러·원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넘어 1410원 선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노조 파업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영 환경에 직면했다. 관세·환율·노조 변수까지 겹치자 재계 전반에서 비상경영 체제 준비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관세협상 ‘3500억달러’ 불확실성에 환율 1410원 돌파

    26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합의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한미 무역 합의와 관련해 “한국에서는 3500억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로이터 인터뷰에서 "(한미 간)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해석된다.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고한 대(對)한국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지만, 이행 방안을 놓고는 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에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펀드 금액을 더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 달러나 그 이상의 대미 투자가 이뤄질 경우 대규모 자금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단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500억 달러는 8월 말 기준 한국의 외환보유액(4163억 달러)의 약 84.1%에 해당한다. 한미 간의 불협화음이 커지면서 국내 주식시장은 이날 패닉 장세를 연출했다. 코스피 지수는 장중 100포인트 넘게 빠지면서 3367.71까지 내려앉았고, 원달러 환율은 1412원선까지 급등했다.
  •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전경ⓒ현대자동차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전경ⓒ현대자동차
    관세 충격, 자동차·제약·바이오·철강 업계까지 강타

    가장 속이 타는 곳은 현대차다. 일본에 이어 유럽도 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24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밝혔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에서 주요 플레이어는 한국, 유럽, 일본인데, 한국은 여전히 25% 관세가 적용되고 있기때문이다. 유럽과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를 부담하며 당분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분기에도 관세 여파로 현대차 영업이익은 8282억 원, 기아는 7860억 원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진행한 CEO 인베스터 데이 행사에서 "관세율이 25%로 유지될 것을 감안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면서도 "관세율이 15%로 낮아질 경우 목표(가이던스)를 달성하기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수출산업경기전망(EBSI)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4분기 EBSI는 69.3으로 집계됐다. EBSI는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회복, 미만이면 경기 둔화를 뜻하는데, 이번 수치는 업황 부진이 이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국내 철강 업계도 고사 위기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3월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 이를 50%로 인상했다. 이 영향으로 7월 한국 대미 철강 수출은 지난해보다 25% 이상 줄었다.

    제약·바이오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부터 미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는 제약회사의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국 밖에서 의약품을 생산해 대미 수출을 하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공장 신설과 인수합병 등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 지난 3일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 3일 울산시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현대차 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노란봉투법에 노조 파업까지 몸살 …비상경영 돌입

    한미 관세 협상 지연 등으로 이미 어려운 상황인데, 집안 살림까지 흔들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조 리스크까지 겹치며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재계 전반에서 희망퇴직 등 비상경영 체제 가동 준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현대·기아 노조의 임단협이 최근 극적으로 타결되며 고비를 넘겼지만, 이어 주요 부품사인 현대모비스의 파업 리스크가 또다시 닥쳤다. 자회사 모트라스와 유니투스는 임단협에 난항을 겪으면서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현실화했다. 지난 24일 두 회사는 주야간 4시간씩 부분 파업에 나서면서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라인이 멈췄고, 기아 오토랜드 광주 1·2공장도 가동을 중단했다. HD현대중공업도 4차례 전면 파업, 11차례 부분 파업으로 진통을 겪으며 최근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정부 주도로 사업재편을 앞둔 석유화학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NCC 통폐합 과정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조 파업과 손해배상 청구 부담이 커졌다. 하청업체가 많은 석유화학 업계 특성상 대규모 노사 갈등으로 번질 위험도 크다. 실제 SK지오센트릭을 둔 SK는 지난달 28일 회사채 발행 공시에서 "자회사의 석유화학 사업 재편이 노란봉투법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투자 유의를 명시했다.

    반도체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SK하이닉스 1차 협력사만 1800여 곳에 달한다. 특히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내내 가동돼야 하는 특성상, 자칫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하루만 멈춰도 1조 원 이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사실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어,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로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어려운 경영환경은 구조조정 등 비상경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전 사업부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MS사업본부에서 먼저 시작한 희망퇴직은 3분기 실적 부진 우려로 전사 차원으로 확대되며 인력 효율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가 전 사업부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2023년 이후 2년 만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LG전자의 희망퇴직 사례가 앞으로 다른 기업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영환경이 여전히 불안정한 가운데, 비상경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