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통화스와프 대신 ESF 활용 가능성아르헨티나·멕시코·브라질 등 과거 전례 있어ESF로는 역부족 … 다른 자금조달 방안 모색
  • ▲ 미국 트럼프 관세 정책 (PG) ⓒ연합뉴스
    ▲ 미국 트럼프 관세 정책 (PG)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이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전통적인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대신 미국 재무부의 외환안정화기금(ESF)을 활용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 중이다. 한국 원화를 담보로 미국이 직접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산부 장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등 정부 고위 통상협상단이 미국 워싱턴 D.C.로 날아가 한국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성 방안을 놓고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이다. 

    구 부총리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16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대미 투자 선불 요구가 한국 외환시장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면서 원화로 투자금을 조달하는 방안 등 외환 안정성 범위에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대안을 협의했다. 

    이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워싱턴DC의 상무부 청사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동했으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동행했다. 

    잇단 한미 고위급 회동에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방안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협상 돌파구로 미 재무부가 직접 운용하는 ESF(Exchange Stabilization Fund·외환안정화기금)를 활용하는 방안이 부상하면서 이견이 좁혀지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당초 한국은 한국은행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원화를 맡기고 달러를 빌리는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안했지만, 연준의 법적 책무와 짧은 만기(1~3개월)로 인해 장기 투자에는 부적합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ESF는 미국 재무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운용하는 외화 비상금으로 Fed와 별도로 운영된다. 미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도 재무부가 독자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제 금융 수단이다. 주요 역할은 △외환시장 급변 시 달러 공급을 통한 안정화 △지정학적 목적에 따른 우방국 지원 △국제 금융위기 시 긴급 유동성 제공 등이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와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페소화를 담보로 달러를 공급한 사례가 있으며, 과거 1995년 멕시코 페소 폭락 사태 당시에도 ESF를 통해 최대 200억달러의 유동성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 1998년 브라질에 국제결제은행(BIS) 보증 대출의 일부를 보증하는 다자간보증 형태로 50억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ESF는 미국의 외교·경제 전략과 연계돼 활용되며 한국의 대미 투자 자금 조달 논의에서도 이 기금이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15일(현지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라면 이미 한국은 싱가포르처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을 것"이라고 한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ESF만으로 3500억달러를 지원하기엔 한계가 있다. 8월 말 기준 ESF 순자산은 약 434억달러에 불과해 양국은 다른 자금 조달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투자 시기를 분산해 외환시장 충격을 줄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현금 투자 비중이다. 선불 지급 요구는 철회될 것으로 보이지만, 당초 목표였던 5%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현금 투자가 필요할 전망이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1500억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2000억달러를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투자하려면 연간 660억달러가 필요하지만 한국 정부가 조달 가능한 달러는 연간 최대 200억달러 수준이다.

    한국 협상단은 16일 백악관 예산관리국(OMB)과 마스가 프로젝트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이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재무부가 ESF를 활용해준다면 자금 조달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기껏해야 수백억 달러 수준에 머물 것이라 한계점도 분명하다"며 "나머지 자금에 대해선 우리 외환시장에 무리를 안 주도록 최대한 연도별로 나눠서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