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과열 속 세 달째 '동결' … 경기와 물가 사이에서 흔들리는 통화정책"지금은 때가 아니다" … 인하보다 '균형' 택한 이창용의 신중함경기 둔화 우려 커지지만 완화 기조는 여전, 인하 명분 쌓는 한은
-
- ▲ ⓒ뉴데일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세 달 연속 동결했다. 표면적 이유는 물가 안정이지만, 이창용 총재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부동산 시장이 다시 과열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경기 둔화 우려는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이 총재가 말한 동결의 이유는 부동산 리스크였지만, 그 말 사이에는 다른 두려움이 숨어 있다. 금리 인하를 늦추면 경기 회복의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실기(失機)의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서울 아파트값은 10월 셋째 주까지 0.27% 오르며 4개월 연속 상승했고, 전세자금대출은 6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에도 매수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 총재가 "주택은 자산이 아닌 생활비용"이라고 언급한 이유다. 그만큼 부동산이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이에 이 총재는 통화정책 발표 직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 통화정책으로 불을 지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부동산 과열을 향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단호함 뒤에는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다. 경기 둔화 조짐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완전히 접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경기 지표는 한은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3분기 GDP는 전기 대비 0.2% 성장에 그쳤고, 수출은 미국의 관세 강화 여파로 주춤했다. 반도체 경기 반등이 일부 수치를 떠받치고 있지만, 내수는 여전히 위축돼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0.9% 수준으로 유지됐으며, 내년 역시 1.6%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입장에서는 '경기를 이유로 한 인하 명분'이 서는 상황이다.실제 이 총재는 "금리 인하를 하지 않으면 경기가 더 악화될 수 있다"며 통화정책의 여지를 남겼다. 단기적으로는 '동결', 중기적으로는 '인하'를 염두에 둔 신중한 접근이다. 부동산 때문에 금리를 내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이 총재가 "금리로 부동산을 완벽히 조절할 수는 없다"며 "통화정책은 경기와 자산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한 것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한은 내부의 시그널도 비슷하다. 이날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는 당장 내리진 않더라도 경기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경우, 내년 초 인하로 전환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지난 금통위와 비교하면 '3개월 내 인하' 의견이 1명 줄어 든 것이지만, 금통위원 다수의 방향성은 이미 완화로 기울어 있다는 평가다.증권가 역시 이번 동결을 두고 "인하 시점이 내년 상반기로 넘어갔다"고 입을 모았다. KB·하나·메리츠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한은이 내년 1분기 말 또는 2분기에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을 점쳤다. KB증권은 "이사 수요가 줄어드는 봄 이후 부동산 안정세가 확인되면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며 "부동산과 경기 흐름을 동시에 보려는 신중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이 총재의 고민은 결국 '속도'에 있다. 금리 인하는 불가피하지만, 시장이 자산 가격에 과잉 반응하지 않도록 신호를 늦추는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둔화에 대응해야 하지만, 부동산 리스크를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 그는 이날 "통화정책은 부동산을 부추기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도 "경기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결국 이번 동결은 부동산을 의식한 '잠시 멈춤'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금리를 내리기 위한 전제 조건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과거 2010년 제로 금리 시대가 끝내고 글로벌 금리 인상기에 한은은 정치적 부담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해 실기론에 직면한 바 있다.이 총재는 '부동산이 잡히면 경기가 식고, 경기를 살리면 집값이 오른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