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대미 투자, 한국 제조업 공동화 불씨현대차 아이오닉 5 미국공장 생산량 한국 제쳐AI 확산 속 고용 불안까지 한국 경제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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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현대차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고율 관세 부담은 일부 해소됐지만, 그 대가로 추진되는 대규모 대미 투자가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부추기고 있다. 생산성 둔화와 자본 유출이 맞물리며 한국의 성장 동력은 약화되고, 소비 부진과 고용 악화까지 겹치면서 산업 구조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까지 더해지며 한국 경제는 안갯속이다.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한미 관세협상의 핵심은 '고율 관세 완화'와 맞바꾼 '대미 투자 확대'다. 협상 결과 자동차에는 15%, 철강·알루미늄에는 최대 50%의 품목관세가 각각 적용되고, 그 외 대부분의 수출품에는 상호관세 15%가 부과된다. 대신 한국은 2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국내 기업들도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 별도 대미 투자 1500억달러 등 총 5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고율 관세 부담은 일부 해소됐지만 사실상 '대미 투자 청구서 폭탄'을 떠안은 셈이다. 이번 투자 약속이 현실화되면 기업 자금의 상당 부분이 미국으로 이동해 국내 투자 여력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번 대미 투자가 2010년대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처럼 국내 투자를 보완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 구조가 '공백'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이자 경고의 시그널이다.현대차는 '아이오닉 5'와 '코나 일렉트릭'을 생산하는 울산 1공장 12라인은 올해 들어 주말 특근을 거의 실시하지 않았다. 시간당 생산 대수를 줄이는 '피치다운'도 상시로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아이오닉 5의 주요 시장인 미국 내 생산이 급증했다. 올해 본격 가동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1~3분기 생산한 아이오닉 5는 3만9467대로, 울산공장 생산량보다 많았다.이번 대규모 대미 투자로만 공동화 우려가 나온게 아니다. 생산성 하락이 기업과 가계의 해외 투자를 부추기며 국내 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내 생산성이 0.1% 떨어질 때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내 투자가 0.05%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이 0.15%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국내 생산성 둔화로 투자수익률 격차가 벌어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민소득 기준 순해외투자 비중은 2000~2008년 0.7%에서 2015~2024년 4.1%로 약 6배 급증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투자수익률이 해외 수익률을 밑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현지 공장 증설과 해외 인수합병(M&A)을 확대하며 자본 이동이 본격화했다. 가계는 국내 자산을 줄이고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했다.결국 생산성 저하가 국내 투자 위축을 낳고, 자본 유출이 한국의 성장 기반을 위협하는 악순환이 현실이 되고 있다. -
- ▲ 지난달 28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에 매물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실업률 높고 전기전자·반도체·자동차·모빌리티 분야 인재 탈(脫)한국미국의 관세 장벽이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을 꾸준히 확대하는 추세다.현지 생산 확대는 전기차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내연기관차로도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지난 9월 3만5371대를 생산하며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2만3251대)보다 50%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산타페 하이브리드 생산량은 2325대에서 6974대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현대차 HMGMA 공장은 2028년까지 연 5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현재 40%대에서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현대차는 이미 중국과 인도에서 제3국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동 시장을 겨냥해 사우디아라비아 신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국내 생산의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흐름이 뚜렷하다.국내 제조업 등 산업 전반의 고용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실업률은 증가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15~29세 실업률은 5.1%로, 전년 동기(4.9%)보다 0.2%포인트(p) 올랐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잇따랐던 2016년 이후 4개 분기 연속 청년 실업률이 악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한국 성장을 짊어질 이공계 인재들도 연구환경 악화와 낮은 보상체계 탓에 '탈(脫)한국'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 결정요인과 정책적 대응방향'에 따르면 국내 근무 중인 이공계 인력의 42.9%가 향후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 젊은 연구자층에서는 70%에 달했다.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은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1만8000명으로 두 배 늘었다.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는 금전적 요인(66.7%)이 가장 컸다. 특히 제조업 전기전자·반도체, 자동차·모빌리티 분야의 석·박사급 인력들은 기업 성과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고 인식했다.소비와 자동차 생산이 줄고, 그나마 반도체만 약진하는 불균형한 산업 구조가 더욱 뒤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 확산이 고용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올해 미국에서만 약 100만 명이 해고됐는데 AI 도입이 대규모 감원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PwC는 1500명 감축을 결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올해에만 1만5000명을, 아마존은 1만4000명을 줄였다. 메타 역시 수만 명을 감원했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CEO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며 직원들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국내에서도 투자 위축과 함께 제조업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온다. 생산시설이 해외로 이전하면 직접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대형 공장 인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지역경제까지 타격을 입게 된다. 대미 투자가 불가피하다면 반대로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를 늘려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