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원금 지급 의무 부담, 예·적금 대체 중위험·중수익 상품 부상예금자보호 vs 원금보전, 은행·증권 리테일 자금 지형 재편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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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5~8% 중수익에 원금 보장까지 내건 종합투자계좌(IMA)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은행권이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예·적금 고객이 요구해온 ‘안정성+수익성’을 동시에 겨냥한 상품이 시장에 나오면, 장기 여유 자금이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가는 자금 이동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은행권에서 제기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19일 정례회의에서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국내 1호 IMA 사업자로 승인할 전망이다. 두 회사는 이미 증권선물위원회 심의를 통과했으며 전담 조직 신설과 시스템 구축까지 마무리한 상태다. 지난 9월 말 뒤늦게 신청서를 낸 NH투자증권도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이다.

    ◇원금 보전 앞세운 장기 일임계좌 … 목표 수익률 연 5~8%

    IMA는 개인·법인 고객이 맡긴 자금을 증권사가 재량으로 운용하는 장기 일임형 계좌다. 1년 이내 단기 확정금리 상품인 발행어음과 달리 만기를 길게 가져갈 수 있고 상품 구조상 증권사가 고객에게 원금을 돌려줄 의무를 진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IMA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설계된다. 신용등급 BBB급 이상 기업대출, 인프라, 관련 대체투자 등을 편입하는 중수익형 상품은 보수 차감 전 기준 연 5~6% 수익률을, 중견·중소기업 지분과 하위 등급 회사채 등을 담는 고수익형 상품은 연 6~8%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은행 정기예금에 머물렀던 보수적 자금까지 겨냥할 수 있는 구조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중 예·적금 금리가 한 자릿수 초반에 머무는 상황에서 “예금처럼 돌려받되 수익은 더 높은” 대체재가 등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3배 조달 가능 … 증권사 사업모델 확 바뀐다

    IMA는 대형 증권사의 자금 조달과 운용 구조도 크게 바꿔 놓을 전망이다. 현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IMA까지 더해지면 발행어음과 IMA를 합산해 자기자본의 300%까지 조달이 가능해진다.

    자기자본 8조원을 보유한 증권사를 기준으로 하면 최대 24조원 규모의 장기 운용 여력이 생긴다. 업계에서는 IMA 인가 이후 미래에셋증권이 약 22조9000억원, 한국투자증권이 약 12조8000억원의 추가 자금을 장기 운용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달 자금 가운데 70% 이상은 기업대출, 회사채, 인프라 등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투자해야 하며, 부동산 관련 자산 비중은 10% 이하로 제한된다. IMA·발행어음으로 조성한 자금의 일정 비율은 중소·벤처기업, 신용등급 A 이하 채무증권, 벤처캐피털(VC), 신기술사업금융회사 등에 의무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이른바 모험자본 편입 비중은 내년 10%에서 2027년 20%, 2028년 25%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은행 대출 중심이던 국내 기업 자금조달 구조를 자본시장 기반으로 일부 전환하는 통로가 열린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도 적지 않다.

    IMA가 실제로 예·적금 이탈을 얼마나 촉발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지만, 해외와 국내에서 이미 자금 이동 사례는 확인되고 있다. 일본에서 장기 일임형 자산관리 계좌인 랩어카운트는 개인·법인의 예금성 자금을 투자성 자산으로 옮겨오며 잔액이 빠르게 증가했다. 제도 구조는 한국의 IMA와 다르나 “예금 대신 장기 일임형 계좌”라는 선택지를 제시해 자본시장으로 자금 흐름을 바꿨다는 점에서 기능이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도입 이후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간 퇴직연금 자금이 1조원을 넘겼다. 수익률 격차가 뚜렷해지자 고객이 자연스럽게 증권사를 선택한 결과다. IMA가 본격 가동될 경우 일반 개인의 장기 여유자금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 “예금자보호 vs 원금보전” 차별화 전략 고심

    은행권의 최대 고민은 그동안 예·적금이 가져온 ‘절대 안전자산’ 이미지가 IMA 등장으로 희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 예금은 예금자보호 제도와 중앙은행 유동성 지원을 기반으로 한 공적 안전망을 강점으로 내세워왔지만 IMA 역시 계약상 증권사가 원금 지급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고객 인식상 안정성의 간극이 좁혀질 수 있어서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지면 예·적금 금리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IMA가 연 5% 안팎의 목표 수익을 제시할 경우, 당장 생활자금·결제성 자금이 아닌 2년 이상 장기 여유자금을 가진 고객은 분산투자 차원에서 IMA를 검토할 여지가 커진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상품 구조와 영업 전략이 공개되지 않아 증권사도 어느 정도까지 사업을 키울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단계”라면서도 “원금 보장에 추가 수익을 더하는 구조로만 보면 은행에도 주가연동 예금(ELD)·채권(ELB), 맞춤형 신탁 등 대응 상품이 있는 만큼 예금자보호가 적용되는 전통 예금 고객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IMA를 “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하면서도, 은행 수신 기반이 곧바로 붕괴되는 그림을 그리기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IMA 도입은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은행 예금 자금이 증권으로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결제성 수신은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2년 이상 장기 여유자금을 가진 고객, 특히 ‘예금 이상의 수익은 추구하되 원금 훼손 가능성은 최소화하고 싶은 고객’은 상품 구조와 금리가 합리적이라면 은행에서 증권으로 옮길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IMA가 당장 은행 수신을 대규모로 잠식하는 결과로 이어질지 여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며 “제도 시행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은행과 증권이 어떤 자금(단기·장기)과 어떤 위험 선호(안정·수익)를 맡을지 자연스럽게 재배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예금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본연의 수신 기능을 유지하고, 증권은 장기·수익추구성 자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방향으로 역할이 분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은행의 과제는 이 과정에서 유동성·안정성·생애주기 관리를 포함한 고유 강점을 얼마나 선명하게 재정립하느냐에 있고, 증권사의 과제는 IMA를 통해 장기 자금 운용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느냐로 요약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