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기업, 전사적 AI 도입으로 본격적인 ‘AI 경영 시대’ 돌입효율로 시작된 자동화, 시스템 리스크와 위기 대응력 약화 불러과도한 의존 구조, 산업 전반의 새 리스크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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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hatGPT 생성
AI는 이제 유통과 식품 산업의 운영 전반을 움직이는 필수 인프라가 됐다. 효율과 편의는 크게 높아졌지만, 글로벌 클라우드 장애처럼 단 한 번의 시스템 오류가 물류·결제·검색·예측을 동시에 멈추게 만드는 취약성도 드러나고 있다. 자동화에 따른 인력 축소까지 겹치며 기업들의 대응 능력은 더 약해지는 상황이다. 뉴데일리는 ‘AI의 역습’ 기획을 통해 산업 곳곳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위험, 그리고 유통 기업들이 맞닥뜨린 새로운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유통산업 전반이 AI 기반 경영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수요예측과 마케팅 자동화, 고객 응대, 재고관리, 추천 알고리즘은 이미 대부분의 기업이 핵심 전략으로 채택한 분야가 되었고, ‘AI 효율성=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다.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리테일테크 시장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황병조 교수 연구진이 2025년 발표한 ‘The Effect of Retailtech AI Service Acceptance on Behavioral Intention’ 논문은 글로벌 리테일테크 시장 규모가 2022년 349억 달러에서 2024년 513억 달러로 커졌으며, 2028년에는 1025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유통 부문의 AI 투자 강도는 이미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글로벌 기준으로만 봐도 유통업계는 2022년부터 해마다 약 73억 달러를 AI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업계 내에서는 AI를 ‘가장 중요한 신기술’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하다.엔비디아가 지난해 발표한 ‘2025년 생활소비재(CPG) 시장과 AI’ 보고서에서도 소비재·유통 기업의 89%가 이미 AI를 운영에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97%는 다음 회계연도에 AI 관련 지출을 늘릴 것이라고 답해, AI가 단순한 도입 단계를 넘어 ‘전략적 투자영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대표적 사례는 아마존의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이고, 월마트 역시 음성·챗 기반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AI 기술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국내에서도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그룹을 비롯해 풀무원, SPC, 대형마트, 편의점, 면세점 등 대다수 유통기업이 재고 최적화, 발주 자동화, 고객 분석, 매장 운영 분야에 AI를 본격적으로 접목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고객경험 개선과 비용 절감, 수익성 향상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그러나 최근 산업 곳곳에서는 급격한 AI 도입이 새로운 불확실성을 낳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이달 초 미국 웹 인프라 기업 클라우드플레어의 장애로 챗GPT·X·스포티파이·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주요 서비스가 동시에 멈춘 사건은 AI·클라우드 기반 산업 구조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다.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약 20%가 클라우드플레어 네트워크를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번 장애는 온라인 서비스 + 클라우드 인프라 의존 구조에서 나타난 ‘단일 실패점’이 가진 위험성을 극적으로 보여줬다.지난해에는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장애가 세계 각국의 IT 시스템을 마비시키며 항공 운항까지 차질을 일으킨 바 있다.이러한 사고들은 기업 경영 전반이 AI·클라우드 기반 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된 현재 구조에서 'AI가 멈추면 회사도 멈춘다'는 현실을 일깨운다.고객 응대, 검색, 결제, 추천 기능은 대부분 AI가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가 몇 시간만 중단돼도 매출 손실과 고객 불만이 즉시 드러난다.알고리즘 오류로 잘못된 상품이 추천되거나 자동 응답이 엉뚱한 안내를 내보내면 브랜드 신뢰에는 치명적인 손상이 남는다. 예측 모델이 한 번 뒤틀리면 공급망 전반의 계산이 어긋나 재고·생산·배송까지 2차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기업들은 최근 불황과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인력 감축을 이어가고 있지만, AI 중심 운영 구조에서 시스템이 멈출 경우 이를 대체할 ‘사람 기반 대응력’은 충분히 마련돼 있는지 의문이다.기업이 AI를 너무 깊게 구조에 편입시키면서 인력·매뉴얼·대응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AI가 고객 응대의 80%를 담당하는 기업에서 챗봇이 다운되면 고객센터 대기시간은 몇 분 만에 두 시간 이상으로 늘어나고, 자동화된 재고 계산이 틀어지면 매장에서는 ‘품절 표시된 상품이 실제로는 창고에 쌓여 있는’ 혼란이 발생한다.AI 도입이 효율을 극대화했지만, 동시에 기업 내부의 전통적 운영 역량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낸 셈이다.최근 많은 기업은 클라우드·AI 모델·자동화 시스템을 사내 운영에 통합하면서도 장애가 발생하면 이를 ‘시스템 점검’이나 ‘일시 오류’ 정도로 축소해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재고 오류나 추천 실패, 배송 지연이 AI 문제에서 비롯됐음에도 ‘운영상 착오’로 처리돼 공개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기업이 평판 리스크를 우려해 AI 장애를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향까지 겹치면서, 사회 전체가 AI 의존의 실제 위험성과 피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구조적 맹점이 발생하고 있다.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두고 '효율이 높아질수록 의존이 깊어지고, 의존이 깊어질수록 장애의 충격은 더 커지는' 구조적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진단한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 개인의 행태를 지나치게 세분화·내재화하면서 오히려 소비자를 고정된 패턴에 가두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발견하고 혁신하는 능력이 오히려 약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