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LTV 제재 땐 RWA 10년 누적 … 銀 "기업대출 50조원 줄어들 수도"금융위 "과징금은 잘못의 비용 … 바젤·신인도 감안, 섣부른 완화는 시기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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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 단위 과징금을 그대로 위험가중자산(RWA)에 묶어두면 기업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과징금이 부담된다면 위험한 영업부터 줄여야 합니다.”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정보교환 제재를 앞두고 은행권과 금융당국이 자본규제 체계를 두고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감독·규제기관은 “규율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한 제재”를 강조하지만, 은행들은 “과징금의 RWA 장기 반영이 생산적 금융 여력을 잠식한다”며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연말까지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의 제재·심의 일정이 줄줄이 예고되면서 ‘조단위 과징금 시대’에 자본규제 원칙과 생산적 금융 확대라는 두 정책 목표를 어떻게 조정할지가 금융정책의 최대 시험대로 떠올랐다.◇공정위 'LTV 담합' 판단 커질수록 금융위 'RWA 유예' 부담 확대1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의 LTV 정보교환 사건은 미확정 과징금의 RWA 즉시 반영 완화 논쟁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과징금 규모가 커지고 소송전이 본격화할수록 은행들은 기업여신 여력 축소를 ‘생산적 금융 훼손’으로 연결시키며 금융당국에 RWA 반영 유예 요구의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공정위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LTV 관련 자료 7500여건을 사전 공유해 사실상 대출 한도와 조건을 맞춰 왔다고 보고, 이달 말 전원회의에서 제재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심사보고서 보완과 현장조사 재실시를 거치며, 공정위는 정보교환이 실제 대출 조건에 미친 영향과 매출액(관련 대출 잔액·연장분 포함)을 다시 산정했다. 금융권에선 관련 매출액 범위를 넓게 잡을 경우 과징금이 수조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정보교환 담합이 은행권에 적용될 경우 사실상 첫 사례다.은행권은 “리스크 관리를 위한 관행적 정보 공유일 뿐 대출금리·한도를 맞추기 위한 합의가 아니었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LTV를 낮추면 오히려 대출 한도가 줄어 은행 수익에도 불리한 만큼, 부당이익이나 경쟁 제한 효과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은행들은 이런 주장을 담은 소명서를 제출했고, 제재가 강행될 경우 행정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결국 쟁점은 “민감정보 교환이 실제 경쟁 제한으로 이어졌는지”, “명시적 동의 없이 정보만 주고받아도 합의로 볼 수 있는지”에 모아진다. 공정위가 어느 수준의 경쟁 제한성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이후 소송전과 과징금 규모가 갈릴 전망이다.◇홍콩H지수 ELS 2조원 제재 … “RWA 12조원·기업대출 50조원 위축” 경고금감원이 지난달 말 홍콩H지수 ELS를 판매한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총 2조원 안팎의 과징금·과태료를 사전 통보한 것도 은행권의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후 첫 조단위 금전제재다.현행 규제에서는 금융회사가 과징금을 부과받는 즉시 해당 금액의 약 600%를 운영리스크 RWA로 추가 인식하고, 이 손실 데이터가 최대 10년까지 RWA에 반영된다. 단순 계산으로 2조원 과징금은 약 12조원 규모의 RWA 증가를 의미한다. 금융권에서는 이 경우 금융지주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1%포인트 안팎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은행들은 “내년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앞두고 자본여력을 기업·벤처대출 확대로 돌려야 하는 시점에 RWA를 10년 동안 묶어두면 기업여신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대출과 국민성장펀드 투자 등은 주택담보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만큼, 자본비율을 방어하려면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주장이다.실제 시뮬레이션도 돌아가고 있다. 한 시중은행이 5000억원 과징금을 부과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약 3조5000억원 수준의 추가 RWA 부담이 발생하고, CET1 비율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수조원 규모 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내부 추정이 나온다. 이를 4대 은행 전체로 단순 확대한 시나리오에선 기업대출 여력이 최대 50조원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된다.◇은행 “미확정 과징금을 10년 잠그나” … 금융위 “완화 전제 검토 아니다”은행권은 미확정 과징금을 곧바로 RWA에 반영하는 현 체계를 바꾸는 방안을 비공식 채널을 통해 꾸준히 제기해 왔다. 과징금이 행정소송·민사소송을 거치며 감액되거나 취소될 수 있는데도, 부과 시점부터 확정된 손실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은행들이 거론해온 아이디어는 과징금 RWA 반영 시점을 금융위 의결이 아닌 법원 1심 확정 이후로 늦추거나 확정 전에는 일정 비율만 부분 인식하고 나머지는 추후 정산하는 방식, 운영리스크 손실데이터 반영기간을 현재 최대 10년에서 3~5년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 등이다.금융위원회는 이같은 요구에 대해 “제도 구조를 들여다보는 단계는 맞지만, 완화 방향을 전제로 구체적인 설계를 하고 있지는 않다”며 선을 긋고 있다. 신장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과징금을 언제 확정 위험으로 볼지, 어느 단계에서 자본규제에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국제적으로 뚜렷한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현재보다 건전성 규제를 느슨하게 조정하면 바젤 기준 이행 평가와 대외 신인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과징금이 RWA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위험가중자산의 대부분, 대략 90%는 대출·투자에서 생기는 신용리스크이고, 운영리스크 비중은 약 5% 수준에 그친다”며 “그 안에서 과징금 항목 하나만 과도하게 부풀려 보는 시각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생산적 금융 위축”을 이유로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잘못에 대한 비용은 부담해야 하며, 부담이 크다면 위험도가 높은 영업부터 줄이고 구조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금융권 관계자는 "규율 강화와 생산적 금융 확대라는 두 개의 명분이 정면 충돌하면서 금융당국이 어떤 형태의 ‘RWA 유예 카드’를 꺼내 들지, 그리고 그 대가를 은행·주주·차주 중 누가 얼마나 나누어 부담하게 될지가 올해 금융정책의 마지막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