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필요한 척추환자는 약 20%… 나머지 80%는 '회색지대'이익 중심 구조가 애매한 통증까지 수술·시술로 이어져 클레임 쌓이는 중통증은 주관적 경험… 내러티브 메디신·다학제·AI 결합한 새 치료모델 시급
  • ▲ 신동아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대한신경통증학회장). ⓒ세브란스병원
    ▲ 신동아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대한신경통증학회장). ⓒ세브란스병원
    허리가 아프면 MRI를 찍고, 영상에 작은 이상이 보이면 진단명이 붙는다. 디스크, 협착증, 전방전위증. 진단이 찍히면 수술·시술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척추 진료에서 흔히 목격되는 공식이다. 문제는 이 공식이 환자의 '진짜 통증'을 규명하기보다 고가 시술→효과 미흡→반복 진료의 악순환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신동아 교수(대한신경통증학회 회장)는 최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공식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영상으로 병변이 또렷하고 수술이 꼭 필요한 척추환자는 많아도 20% 수준이다. 나머지 80%는 원인이 복합적이고 애매한 만성통증증후군 환자인데 이들까지 수술·시술 체계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부작용과 클레임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신 교수는 척추 통증환자의 '과잉 진단·과잉 치료'가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를 환자가 배제된 진료형태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가 환자의 얘기를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허리가 아프면 일단 MRI를 찍고 거기에서 뭐라도 보이면 그게 통증의 원인처럼 취급됩니다. 하지만 만성통증 환자는 영상과 증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울·불안·공황 같은 심리적 요인까지 포함해 통증은 '삶의 맥락' 속에서 발생합니다."

    그는 실제 진료실에서 마주한 환자들의 사례를 들며 현실을 설명했다.

    "다른 병원에서 디스크 진단을 받고 오신 분들을 보면 치료 이력이나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통증의 본질은 영상과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영상이 있으니 치료는 '공식'처럼 흘러가버린 거죠. 수술을 해도 성공률이 낮고, 결국 불만과 민원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왜곡을 키우는 배경으로 의사의 판단보다 앞선 제도와 이익 중심 구조를 지목했다.

    "민간 영역에서 병원은 이익이 있어야 유지됩니다. 그러니 이익이 남는 시술·수술 중심으로 시스템이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애매한 통증까지 그 라인으로 끌려 들어가 문제가 커지는 겁니다. 또 각종 급여기준에 갇혀 환자를 보는 것에 제한이 걸리죠. 이제 본질적 접근법으로 바꿀 시기가 된 것입니다."

    ◆ 통증은 MRI가 아니라 서사 … 내러티브 메디신·다학제·AI 결합

    신 교수의 해법은 명확했다. 통증을 영상이 아니라 '서사'로 보는 관점으로 전환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새로운 치료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급여 기준과 수술에 국한된 한계를 벗어나 '내러티브 메디신(Narrative Medicine)'이 강조돼야 한다는 의미다. 

    "통증은 주관적 경험입니다. 같은 병변이라도 멘탈·가족 지지·경제 여건에 따라 치료 반응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지금 의료 시스템에선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계속 강조하는 부분인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빠진 것입니다."

    문제는 현실의 진료 구조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분 진료에서는 '언제, 어디가, 얼마나 아픈가'만 묻고 끝납니다. 저희 같은 큰 병원도 하루 수십 명을 봐야 하고 개인 병원은 그보다 더 많은 환자를 봐야 유지가 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서사 기반 진료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로 그는 상담·심리치료 수가 신설을 제안했다. 

    "만성통증에 필요한 인지행동치료(CBT) 수가가 없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와의 협진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습니다. 통증은 심리·사회·경제까지 얽힌 문제인데, 이를 반영할 구조가 없으니 치료가 늘 빗나가는 겁니다."

    통증 다학제 시범사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신경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통증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가 한 방에서 환자를 함께 봐야 합니다. 시범사업이라도 시작해야 치료 모델이 바뀝니다."

    AI 역시 중요한 도구라고 봤다.

    "AI는 환자의 통증 언어를 놓치지 않고 분석해주는 도구입니다. 정밀 진단(Precision Diagnosis)이 가능해지고 의무기록·자료 분석 같은 작업을 AI가 맡으면 의사는 환자 이야기를 더 들을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AI와 내러티브 메디신이 결합하면 지금의 매뉴얼 중심 치료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신 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이렇게 정리했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정말 필요한 치료'를 찾게 돕는 일입니다. 통증은 영상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합니다. 고가 시술에 끌려 들어가는 일이 없이 환자 개개인의 삶과 맥락 속에서 치료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통증 의사가 해야 할 본질적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