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필요한 만큼 지정하라" …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에 직접 힘 실어 공단 "재정 누수 막겠다" vs 의료계 "진료권 위축·공권력 남용"사무장병원 단속 명분 속 법 개정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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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권한을 '필요한 만큼' 도입하라고 직접 지시하면서 탈모 치료 급여 논란에 이어 보건의료계 긴장 수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 근절이라는 정책 명분과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업무보고에서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금융감독원의 특사경 운영 사례를 언급했다. 

    당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이 특사경 인력 규모로 '약 40명'을 제시하자 이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그만큼 지정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인 업무보고 자리에서 특사경 도입과 인력 규모까지 거론하며 직접적인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건보공단이 특사경 도입을 숙원 사업으로 추진해 온 배경에는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등 불법 개설 기관 문제가 있다. 이들 기관은 명의 대여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적 특성상 과잉진료와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공단에 따르면 불법개설기관의 부당청구 금액은 지난해 9월 기준 3조5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 환수율은 7.86%(2399억원)에 불과하다. 공단은 낮은 환수율의 주요 원인으로 수사 장기화를 꼽는다. 통상 수사의뢰 후 평균 수사 기간은 약 11개월로 이 기간 동안 불법 개설자가 재산을 은닉하거나 도피해 환수가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현재도 공단 내에는 불법개설기관을 조사하는 전담 조직이 있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어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다. 특사경 권한을 부여해 초기 단계부터 직접 수사에 나서야 실효적인 재정 보호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통령 지시 직후 "공단의 무리한 특사경 도입 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사례를 언급한 데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건보공단은 금감원과 달리 의료기관과 수가(의료 서비스 대가) 계약을 맺고 진료비를 지급·삭감하는 이해관계자"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런 상황에서 강제 수사권까지 더해지면 의료인의 정당한 진료권이 위축되고 방어적 진료를 양산해 국민 건강에 위해가 될 수 있다"며 공권력 남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서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특사경 법안 상정이 추진됐을 당시에도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법안"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한 바 있다.

    의료계는 특사경 도입 대신 자율징계권 강화, 기존 수사기관과의 공조 체계 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불법 행위 단속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수사권을 이해관계자에게 부여하는 방식은 의료기관의 진료 자율성을 훼손하고 국민건강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은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20대 국회부터 관련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로 번번이 처리되지 못했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은 만큼 향후 국회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탈모 치료 급여 확대 논란에 이어 특사경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새 정부 보건의료 정책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 간 긴장 관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불법개설기관 근절이라는 정책 목표와 의료현장의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 어떤 조정안이 마련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