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련소 유상증자, 경영권 분쟁의 새 변수로고려아연·영풍. 제3자 배정 적법성 두고 연일 공방법원 결과 따라 美 제련소·주총 구도 갈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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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아연은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최윤범 회장, 마이클 윌리엄슨 록히드마틴 글로벌부문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록히드마틴과 '게르마늄 공급·구매 및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국내 비철·제련 산업의 맏형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넘기며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본격화한 갈등은 수조원대 자금 소모와 20여 건의 소송, 기업가치 훼손 등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전략 광물 공급망을 책임지는 국내 유일의 제련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와 안보 리스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3라운드’가 예고된 가운데, 본지는 총 6편을 통해 75년 동업의 균열부터 향후 관전 포인트까지 분쟁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를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권 분쟁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미국 정부의 탈중국 핵심 전략광물 공급망 재편 구상과 고려아연의 제련 경쟁력이 맞물리면서, 최윤범 회장 측은 미국 정부라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상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둔 경영권 대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제기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이번 주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주 발행일이 이달 26일로 예정된 만큼, 이번 결정은 내년 주총을 향한 경영권 분쟁의 향방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 ▲ 3월 28일 서울 몬드리안 호텔에서 제51기 고려아연 정기주총이 열리고 있다. ⓒ뉴데일리
◇유상증자 이후 달라지는 지배구조 지형도서울중앙지법은 현재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을 심리 중이다. 법원의 판단 기준은 이번 유상증자가 단순한 경영권 방어 수단인지, 아니면 경영상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인지 여부다.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에서 미국 제련소 건설과 함께 합작법인 ‘크루시블(Crucible)’을 대상으로 2조80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크루시블은 고려아연과 미국 정부 등이 함께 출자해 설립한 합작법인(JV)이다. JV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고려아연 지분 약 10.59%를 확보하는 방안이다.고려아연은 유상증자 자금에 미국 정책금융 대출, 재무적 투자자(FI) 대출, 미 상무부 보조금 등을 더해 총 74억3200만달러(약 10조9900억원)를 제련소 건설에 투입할 계획이다.유상증자가 실행되면 영풍 측 지분은 44%에서 40%로 낮아지고, 최 회장 측 지분은 합작법인 보유분을 포함해 39%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지분 격차가 크게 줄어들면서, 내년 주총에서 최 회장 측에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는 셈이다.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고려아연 측 최 회장과 정태웅 대표이사 사장, 황덕남 위원장 등 핵심 인사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된다. 이런 상황에서 영풍·MBK 연합은 내년 정기 주총에서 이사회 과반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이사회에는 장형진 영풍 고문, 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 부회장, 권광석 사외이사 등 4명이 포진해 있다. 영풍·MBK 연합은 임기 만료 이사를 교체해 이사회 구도를 9대6 또는 8대7로 재편한다는 구상이었지만, 유상증자가 성사될 경우 신규 이사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 ◇쟁점은 ‘적법성’…고려아연, 제2의 한진칼 될까이번 분쟁의 핵심 쟁점은 유상증자의 적법성이다. 영풍·MBK 연합은 이를 “경영권 방어를 위한 편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전략적 투자”라고 맞서고 있다.고려아연은 한·미 양국의 핵심 광물 공급망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제2의 한진칼 판례’를 기대하고 있다. 2020년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법원은 항공산업 구조조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이유로 산업은행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하며 조원태 회장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실제 이번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최 회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 등 미 정부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구체화된 것으로 전해진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방한해 최 회장을 다시 만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최대 물량’ 공급을 요청하며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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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부 모습ⓒ고려아연
◇고려아연 美 제련소, 온산제련소와 시너지 기대고려아연이 추진하는 미국 제련소는 연간 약 110만톤의 원료를 처리해 54만톤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하는 통합 제련소다. 회사 측은 2000년 가동을 시작한 호주 썬메탈 제련소(SMC) 사례처럼, 미국 제련소가 온산제련소 고도화로 이어지는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려아연 관계자는 “미국 제련소는 북미 수요 흡수와 신시장 개척의 중추가 되고, 온산제련소는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철강·방산 등 국내 핵심 산업에 안정적으로 소재를 공급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정책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이를 어디까지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재무 부담도 논란거리다. 이번 투자 구조에서 고려아연이 제공하는 채무보증 규모는 미 국방부 관련 사업을 포함해 총 8조3909억원으로, 자기자본(약 7조6000억원)을 웃돈다.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시장 내 경쟁력 제고와 외형 확대가 가능하다”면서도 “제련소 건설이 본격화되는 2029년까지 부채비율 상승과 순차입금의존도 확대 등 재무 부담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만약 법원의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번 사업은 합작법인의 지분 참여를 전제로 미 상무부 보조금 등 자금 계획이 설계돼 있어, 유상증자가 무산되면 투자 구조와 사업 주체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