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의 청구서, 연금·대출·물가로 분납단기 심리는 진정 … 환율은 여전히 안갯속두 경제로 갈라진 한국 … 금융은 호황, 실물은 역성장금리는 못 올리고 외환은 못 풀고 … 정책 딜레마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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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장부를 위한 환율의 '윈도우 드레싱(Window Dressing)'은 결국 짧은 화장이었다. 12월 한때 1420원대까지 눌린 원·달러 환율은 새해가 시작되자 1480원선으로 복귀했고, 시장은 그제야 외환 방어 비용의 실체를 확인하고 있다. 연말 장부는 단정해졌지만 청구서는 국민연금·대출금리·수입물가를 통해 뒤늦게 배달되는 구조다.

    환율은 연초 빠르게 원위치됐다. 첫 거래주에 1470원을 뚫었고 일부 외환 데스크는 "1500원은 시간 문제"라는 표현까지 쓴다. 대통령의 "1400원대 전망" 발언은 장중 단기 숏커버를 만들었지만, 시장은 이를 근본적 반전이 아니라 '심리 치료' 정도로 분류했다. 시장은 달러 강세·글로벌 금리·지정학 변수·엔화 약세 등 구조 요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외환 방어 비용은 연금 영역에서 조용히 드러났다. 원화 약세 상황에서 달러 자산에 대한 환차익은 기금 운용 수익을 자연스럽게 높인다. 단순 계산으로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오르면 달러 자산 가치는 약 25% 재평가된다. 그러나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 명목으로 연금에 헤지 비중 확대·환전 비율 조정을 요구하면서 연금의 '기회수익'이 차단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환 방어를 위해 연금 수익률이 희생되는 기형 구조인 셈이다.

    환율 방어에 묶인 금리정책의 혼선은 시장금리를 먼저 흔들었고, 그 비용은 가계의 직접적인 청구서로 날아들었다. 기준금리는 2.50%에 묶여 있지만 시장금리는 홀로 움직이고 있다. 은행채 5년물 금리와 코픽스(COFIX)가 동반 상승하면서 주담대 혼합형은 4.1~6.4%대, 변동형도 4% 후반~6%대로 올라섰다. 연초 은행들은 대출 총량 규제를 일부 풀어 주담대·전세대출 판매를 재개했지만, 차주는 사실과 다르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DSR 규제는 유지되고 한도는 묶여 있는데 금리만 뛰는 조합인 것.

    두 비용 전가 구조는 성장 둔화와 겹친다. 반도체와 글로벌 자금 유입 덕에 코스피는 5000선을 돌파했지만 4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연간 성장률은 0.97%로 잠재성장률(1.8% 추정)의 절반 수준이다. 세부 항목도 부진했다. 민간소비 +0.3%, 건설투자 -3.9%, 설비투자 -1.8%, 수출 -2.1%. 반도체 수출의 성장 기여도 0.9%p는 가격 요인이었고 설비·고용·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 금융시장만 뜨겁고 실물은 식는 '유리그릇 경제'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정책 신호도 혼선을 키웠다. 한은은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올해 1월 금통위에서는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 '인하 사이클 종료'라고 해석했고 장기 금리에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붙으며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졌다. 환율·대출·성장·부동산이 동시에 묶이면서 정책 공간은 오히려 축소됐다.

    결과적으로 연말의 환율 안정은 장부에서만 성립했다. 대신 연금 수익률·가계 이자·실질 구매력에서 비용이 분납되고 있다. 정부는 환율을 누르고 금리를 눌러 부동산 시장을 지키려 하지만 그 사이 연금은 기회비용을 떠안고 가계는 대출 이자로 청구서를 받는다. 외환 방어는 현재진행형이나 비용 배분은 미래지향적이다.

    시장에서 들리는 표현은 더 간결하다. 윈도우드레싱은 끝났고, 청구서는 이제 시작됐다는 것. 문제는 그 비용이 정부 장부가 아니라 국민 노후·가계대출·실물경제라는 다른 통로에서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정부는 연말 장부를 지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 비용은 연금 수익률·가계 이자·실질 구매력으로 치환됐다"며 "비용을 어디에서 어떻게 누가 부담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