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랠리에 골드뱅킹 2조 돌파 … 실물 골드바 품귀까지달러예금 금리 0%대 추락, 환율 방어에 자금 유출 가속원화 예금도 탈출 러시 … 한 달도 안 돼 26조 증발은행권 수신 포트폴리오 재편 압박 … 전략 재조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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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하는 동안 달러예금 금리는 0%대로 떨어지며 자금 이탈이 이어졌다. 골드뱅킹 잔액은 2조원을 넘어섰고 실물 골드바는 품귀 현상까지 나타난다. 안전자산 머니무브가 현실화되면서 은행권의 수신 전략도 재조정의 기로에 섰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제 금 가격은 지정학 리스크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겹치며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최근 국제 금 현물은 장중 온스당 5100달러를 넘어섰고, 연초 대비 상승률은 20% 안팎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60% 넘는 급등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까지 상승세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금 투자 접근성이 높은 골드뱅킹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 3곳의 골드뱅킹 잔액은 이달 22일 기준 2조 1494억원으로 1개월 만에 11% 넘게 늘었다. 지난해 3월 1조원을 처음 돌파한 뒤 10개월 만에 2조원 선을 넘어선 것이다. 올해 들어 3주 동안 주요 은행에서 판매된 골드바는 716억원 규모로 전월 대비 두 배 수준이다. 일부 은행은 공급 부족으로 1kg 골드바만 취급하는 상황이며, 은 가격 급등으로 실버바는 판매가 중단됐다.

    반면, 달러예금은 환율 방어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부터 달러예금 과다 적체가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고 보고 주요 시중은행 외환담당 임원을 연쇄 소집했다. 이후 은행들은 달러예금 금리를 일제히 인하했다. 신한은행은 쏠(SOL) 트래블 외화예금 달러 금리를 연 1.5%에서 0.1%로, 하나은행은 2.0%에서 0.05%로 낮췄고 우리은행도 1.0%에서 0.1%로 떨어뜨렸다. 사실상 '무이자' 수준이다.

    유인 제거 효과는 즉시 반영됐다. 지난달 말 역대 최고였던 5대 은행 달러예금 잔액은 이달 22일 기준 656억 달러에서 632억 달러로 3.8% 감소했다. 특히 전체 잔액의 80%를 차지하는 기업예금이 25억 달러 넘게 줄었다. 기업들이 환율 고점 판단과 당국 권고에 따라 달러 현물을 매도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개인예금은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증가 폭은 10분의1 수준으로 급격히 둔화됐다.

    결과적으로 안전자산 수요는 유지됐지만 '달러→금'으로 자산 선호 축이 이동한 셈이다. 과거 한국의 안전자산 수요는 환율 변동기마다 달러로 쏠리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왔지만, 이번에는 달러 보유 매력이 낮아진 반면 금 보유 실익이 부각되면서 분기점이 형성됐다는 평가다.

    달러예금뿐 아니라 원화 예금에서도 자금 이탈 조짐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 강세가 이어지면서 정기예금과 요구불예금을 가리지 않고 시중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시중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4조원 넘게 감소했고, 요구불예금 역시 전달 대비 약 22조원 줄었다.

    문제는 이런 자금 이탈 국면에서 은행들도 마땅한 대응 카드를 꺼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은행에 쌓여 있는 유동성이 줄어든 데다 정부 기조에 맞춰 주택담보대출 등 주요 여신 창구도 위축되면서 굳이 비싼 이자를 주고 자금을 끌어올 유인 자체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들이 예금을 더 끌어와도 마땅히 굴릴 곳이 없는 구조에서, 수신 경쟁에 다시 불을 붙이기도 부담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은행들은 고금리 특판 적금이나 주식시장과 연동된 지수연동예금(ELD) 상품을 내놓으며 부분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이런 상품들은 일시적인 수신 보완 수단일 뿐, 자금 흐름 자체를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수신 전략 재편이라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달러예금은 수신 기반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포트폴리오 자산이지만, 당국 정책 방향과 가격 매력이 동시에 훼손되면서 유지 동력이 약화됐다. 반면 금 상품은 수신으로 분류되지 않는 데다 위험관리·헤지·매매 관리 등 추가 비용이 따른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고금리 예금 경쟁 이후 또 다른 '상품 조합'을 고민해야 하는 셈이다.

    정책 변수도 적지 않다. 정부는 환율 안정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는 추가적인 외환시장 안정 기제를 검토 중이다. 이와 달리 금 가격 랠리의 동인은 글로벌 지정학·탈달러 담론·중앙은행 매수 확대 등 구조적 요인이 짙다. 둘 사이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에서 은행권의 상품·리스크 관리 판단이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머니무브가 단기 현상이 아닐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환율·정책·상품 구조가 동시에 얽혀 자금 선택지가 이동하는 국면을 감안했을 때 달러와 금 간 안전자산 경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안전자산 선호는 계속되지만 달러가 아닌 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수신 기반·비이자수익·투자상품 구조가 동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