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오지급 사고가 드러낸 가상자산 제도와 책임의 경계미회수 비트코인 처리와 법적 판단의 기준국내외 가상자산 규제 구조와 이번 사태의 의미강제청산 발생 이후 금융당국 대응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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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진 금감원장 ⓒ금감원
"재밌어서는 안 되는데, 법조인 입장에서는 재밌는 이슈가 많다."빗썸의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를 두고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간담회에서 던진 이 표현은 현장 분위기를 잠시 멈추게 했다. 약 6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사고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재미'라는 단어는 이례적이었다.이 발언은 미회수된 비트코인의 법적 처리와 개인 투자자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빗썸은 지난 6일 이벤트 보상 지급 과정에서 단위를 원화가 아닌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입력해 249명에게 총 62만BTC를 오지급했다. 사고 당시 시세 기준 약 60조76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99.7%는 회수됐지만, 125BTC(약 120억원)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이 원장이 '재밌다'고 표현한 배경에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이 가진 구조적 모호성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 가상자산은 세법상 과세 대상이자 재산적 자산으로 인정되지만, 통화정책에서는 법정화폐가 아닌 민간 디지털 자산으로 분류된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거래와 이용자 보호를 규율할 뿐, 지급수단이나 금융상품으로의 성격은 유보하고 있다. 형법 역시 가상자산을 재산범죄의 객체로 보지만, 별도의 범주로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는다.이 같은 구조는 사고 발생 시 책임 판단을 복잡하게 만든다. 빗썸 사태 역시 통화 사고라기보다는 자산 관리와 이용자 보호 실패로 분류된다. 전산상 오입력된 데이터가 내부 장부상 거래로 성립됐고 일부는 실제 매도와 재매수, 현금 인출로 이어졌다. 가공의 입력 오류와 실질 거래 효과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이다.법조계에서는 민사적으로는 부당이득 반환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이미 매도된 비트코인은 매도 시점 가액 기준으로 반환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반면 형사 책임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법원은 2021년 착오로 송금된 비트코인을 다른 계정으로 이체한 사건에서 가상자산을 형법상 '물건'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 판례가 이번 사안에서도 판단의 기준선으로 거론된다.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위치는 더 분명해진다. 미국은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를 중심으로 규제하며, EU는 MiCA 체계를 통해 가상자산을 새로운 금융자산군으로 제도화했다. 일본은 암호자산을 법정화폐로 보지는 않지만 결제 기능을 일부 인정하고, 고객 자산 분리 보관을 의무화했다. 반면 한국은 이용자 보호를 우선하면서도 자산의 성격 정의는 2단계 입법으로 넘긴 상태다.사고 여파는 시장에도 번졌다. 오지급 물량이 단기간 매물로 쏟아지며 비트코인 가격은 빗썸에서 한때 8111만원까지 급락했고, 이 과정에서 코인 담보 대출을 이용하던 계좌 64건에서 강제청산이 발생했다. 빗썸은 해당 피해를 전액 보상하겠다는 입장이다.금융당국은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감원은 현장 점검을 중단하고 정식 검사에 돌입한 상태다. 실제 보유 물량을 크게 초과하는 비트코인이 장부상 지급될 수 있었던 구조, 내부 통제와 자산 보관 기준이 핵심 점검 대상이다. 검사 결과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과 거래소 규제 강화 논의로 이어질 전망이다.시장에서는 이 원장의 '재밌다'는 표현이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과 제도적 공백이 동시에 드러났다는 문제의식을 압축한 표현으로 보고 있다. 가상자산을 '자산이지만 화폐는 아닌 것'으로 규율해 온 시스템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