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공모 회사채 발행 장기 자금 조달 나서중동 리스크·금리 상승에 장기채 조달비용 부담SK하이닉스, 한 달 새 3조 단기자금시장에 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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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채 시장이 흔들리는 와중에 SK그룹이 상반된 자금 전략을 동시에 드러냈다. 지주사인 SK㈜는 공모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장기 자금 조달에 나섰고, SK하이닉스는 AI(인공지능) 메모리 호황으로 쌓은 현금을 기업어음(CP)과 전단채, 랩·신탁 등 단기물에 넣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 한쪽은 시장에서 돈을 조달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이 흐름은 계열사별 자금 사정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와 금리 상승,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이동이 겹치며 장기채 조달 여건은 빠르게 나빠졌고, 반대로 AI 반도체 호황을 탄 초우량 제조업체는 막대한 현금을 바탕으로 단기 운용에 나서는 국면에 들어섰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산업 사이클의 격차가 자본시장 전략의 차이로 그대로 이어진 사례로 보고 있다.

    ◇장기 조달 나선 SK … 승부처는 5년물·10년물

    20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3년물·5년물·10년물로 구성된 공모 회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모집액은 2500억원이며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4500억원까지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일정은 오는 24일 수요예측, 31일 발행 예정이다. 희망금리 밴드는 민평금리 대비 마이너스 30bp(1bp=0.01%포인트)에서 플러스 30bp다.

    발행사 체력만 놓고 보면 SK는 대표적인 우량채 발행사다. 신용등급은 AA+(안정적)이고,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등 주요 자회사 지분을 바탕으로 배당수익과 상표권수익, 재무 융통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에도 네 차례 공모채 시장을 찾아 연간 1조6300억원을 조달했고, 2016년 이후 10년 연속 연간 발행액 1조원을 넘겼다.

    문제는 발행 자체보다 장기물 투자심리다. 중동 불안으로 국제유가와 장기금리가 함께 오르면서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듀레이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3월 9일 기준 국고채 5년물 금리는 3.652%, 10년물 금리는 3.739%로 집계됐다. 3월 3일과 비교하면 각각 22.8bp(1bp=0.01%포인트), 14.5bp 올랐고, 1월 2일 대비로는 각각 41.3bp, 35.3bp 상승했다. 3년물보다 5년물·10년물에서 투자자들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배경이다.

    결국 이번 수요예측의 핵심은 장기 만기 주문이 어느 정도 붙느냐다. SK처럼 우량한 발행사도 장기 구간에서는 금리와 수요를 동시에 점검받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발행 여부보다 어떤 금리 수준에서 장기 자금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이닉스는 3조원 단기시장으로 … 반도체 호황이 바꾼 돈의 방향

    반면 SK하이닉스의 움직임은 정반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2조원을 CP와 전단채 등 단기자금시장에 집행했고, 지난달에도 1조원 규모 자금을 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 등에 투자했다.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3조원이 단기시장으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 자금이 단기물 일부 구간의 수급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경은 분명하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4조9423억원으로 1년 전 14조1564억원보다 20조7859억원 늘었다. 회사가 공식 발표한 2025년 연간 매출은 97조1467억원, 영업이익은 47조2063억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중심으로 한 AI 메모리 판매 호조가 현금 유입을 키우면서 재무구조도 순부채에서 순현금 상태로 전환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SK하이닉스가 장기물보다 단기물에 집중하는 배경도 뚜렷하다. 반도체 산업은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에 대규모 자금이 상시 투입되는 구조다. 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예상 자본적지출을 35조원~40조원, 연구개발비를 5조원~7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용인 팹과 M15X, EUV(극자외선) 장비 투자까지 감안하면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편이 유리하다. 예적금보다 수익률이 높고 만기가 짧은 CP와 전단채, 단기 여전채 등에 자금을 넣는 선택은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시장에서는 이 자금이 단순한 잉여자금 운용을 넘어 단기자금시장 수급 안정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회사채 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초우량 제조기업의 대규모 자금이 단기물 소화에 들어오면 심리 안정과 수급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SK그룹 내에서 이 같은 대비는 현재 자본시장의 온도차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들어 3월 11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29조6692억원에 그친 반면 상환액은 30조5975억원으로 9283억원 순상환이 발생했다. 발행은 전년 동기 대비 16.9% 줄었고 상환은 20.7% 늘었다. AA- 3년물 금리는 3.997%까지 올라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채권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회사채보다 은행 대출로 조달 경로를 바꾸는 흐름도 보이고 있다. 2월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379조2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9조6000억원 늘어 지난해 4월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 폭을 나타냈다.

    이런 환경에서 SK는 장기 조달 비용과 수요를 점검받고, SK하이닉스는 넘치는 현금을 어떻게 짧고 유연하게 굴릴지 고민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산업의 체력과 현금흐름에 따라 자본시장 내 위치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는 차환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선제적으로 시장을 두드리고, 반도체 계열사는 당장 시장성 조달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 "같은 그룹 안에서도 산업별 현금창출력과 투자 부담, 조달 여건이 이렇게 갈린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의 체온차가 커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SK하이닉스가 쌓아둔 재무 여력이 향후 업황 조정기에 얼마나 버퍼 역할을 하느냐가 신용도와 투자 전략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