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생산·시험 데이터 연결… 빠른 판단 가능3D 도면·가상공정·통합관리… 비행시험 무사고美 록히드마틴도 주목한 KF-21시험관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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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F-21가 지난해'서울ADEX 2025(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2018년 미국 국방부가 디지털 엔지니어링 전략을 발표하자 한국항공우주(KAI)의 KF-21 개발팀은 한껏 고무됐다. 주영신 KAI 디지털 엔지니어링 팀장은 "'우리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았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KF-21은 T-50 이후 20년 만에 개발한 전투기였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개발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T-50은 훈련기였지만 KF-21은 레이더와 무장, 비행제어 장치 등을 갖춘 쌍발 전투기다. 개발 난이도부터 달랐다. 첨단 항공기 개발 사업이 꾸준이 이어졌다면 그때그때 새로운 기술을 적용했겠지만 KF-21은 20년의 공백을 한꺼번에 메워야 했다.KF-21 개발에 주어진 시간은 단 10년. 시간이 없었다. 설계 자료와 생산 정보, 시험 결과를 부서별로 따로 관리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일정을 맞추는 일은 불가능했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일정 지연이나 사고 없이 전투기 개발이 완료된 사례는 드물었다.21일 경남 사천 KAI 본사에서 만난 주 팀장은 "KF-21 개발은 주어진 기간 내에 반드시 성공해야했다"면서 "모든 개발 데이터를 시스템에 쌓고 지표화해 빠른 판단을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었다"고 말했다.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꺼낸 해법은 '디지털 엔지니어링'이다. 설계부터 해석·생산·시험까지 흩어진 데이터를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를 통해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고 개발에 참여하는 모든 조직이 최신 공유하는 방식이다.이때부터 KF-21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인력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
- ▲ 주영신 KAI 디지털 엔지니어링 팀장 ⓒKAI
◆ 美 국방부 전략보다 1년 앞서 전담팀 꾸려KAI가 KF-21 개발 조직에 디지털엔지니어링팀을 꾸린 것은 2017년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방산업계에서는 디지털 엔지니어링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었다. 이듬해인 2018년 미국 국방부가 '디지털 엔지니어링 전략'을 발표했다. 디지털 모델과 데이터를 무기체계 개발 전 과정에 활용하고 설계부터 운용까지 하나의 정보 흐름으로 연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주 팀장은 "'우리가 틀린 게 아니었구나.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았구나'라는 확신을 얻었다"면서 "우리가 먼저 고민하고 적용하던 방식이 미국에서도 공식 전략으로 발전하는 것을 보며 방향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미 국방부는 이후 관련 정책을 계속 구체화했다. 2023년에는 공식 지침을 제정해 신규 개발하는 사업 전반에 디지털 엔지니어링을 적용하기 위한 정책과 책임, 절차를 마련했다.디지털 엔지니어링의 출발점은 '신뢰할 수 있는 단일 정보'를 구축 하는 데 있다. 설계자는 설계 파일을, 생산 담당자는 생산 자료를, 시험 담당자는 시험 결과를 따로 관리하지 않고 서로 연결된 체계에서 최신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설계가 바뀌었는데 생산 부서가 이전 도면으로 작업하거나 시험 부서가 다른 소프트웨어 버전을 기준으로 시험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개발에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주 팀장은 "전투기 개발에서는 비용과 성능 못지않게 일정 관리가 중요하다"며 "최신 데이터가 있는데도 엉뚱한 자료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개발자가 어떤 정보가 현재 기준인지 알 수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사라진 2D 도면… 3D 모델이 제작 기준가장 큰 변화는 도면이었다. KAI는 KF-21은 제작도면을 모두 3D 모델 중심으로 바꿨다.3차원 모델에는 항공기 형상뿐 아니라 부품의 치수와 공차, 재질, 조립 정보까지 담아냈다. 설계자는 항공기 전체에서 날개와 동체, 배관, 장비 등 필요한 부분만 불러낼 수 있다. 생산·시험·정비 담당자도 별도 뷰어를 통해 같은 형상을 보며 부품 위치와 간섭 여부, 조립·정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주 팀장은 "설계자뿐 아니라 생산과 시험, 정비 담당자까지 같은 형상을 봐야 했다"며 "설계가 어디까지 진행됐고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항공기 중량도 설계 단계부터 시스템으로 관리했다. 목업(Mock-up) 제작 때도 부품별 무게를 입력하지 않으면 설계를 진행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합산해 항공기의 예상 중량이 목표 범위를 벗어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부품 하나의 무게 변화도 항속거리와 기동성, 연료 소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그는 "KF-21이 국내 무기체계 개발 사업 가운데 3D 모델을 공식 도면으로 적용해 규격화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KAI가 처음부터 3D 기반 개발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보잉 787 국제 공동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3차원 설계 자료를 바탕으로 부품을 제작하는 방식을 경험했다. 이후 소형 민항기 KC-100 개발에 일부 적용했고 KF-21에서 본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3D 설계는 엔지니어의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2차원 도면에 익숙했던 설계·생산 담당자는 새로운 시스템을 배워야 했고 협력업체도 3차원 모델을 읽고 제작에 반영할 장비와 인력을 갖춰야 했다. 주 팀장은 "기술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익숙한 업무 방식을 바꾸는 일이었다"며 "설계와 생산, 협력업체가 같은 기준으로 일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시제기 만들기 전 가상공장부터 돌려3D 모델은 설계 단계에만 쓰이지 않았다. KAI는 실제 시제기 제작에 들어가기 전 가상공간에서 생산 시설과 조립 공정을 먼저 검증했다. 생산 라인에 항공기를 어느 방향으로 배치할지, 작업자가 어떤 순서로 이동할지, 설비와 항공기 구조물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지 미리 확인했다. 실제 설비를 설치한 뒤 문제가 생겨 다시 옮기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다.KAI의 몰입형 설계센터에서는 생산 라인 배치와 조립 공정, 조종석 사용성, 정비 편의성 등을 동시에 시뮬레이션 했다. 항공기와 생산 설비를 실제 크기에 가깝게 구현해 작업자가 몸을 숙이거나 팔을 뻗어야 하는 부분까지 확인했다.주 팀장은 "실제 시제기 제작에 들어가면 생산 설비가 우리가 원한 공정대로 배치됐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레이아웃 설계와 작업 동선, 조종석 인터페이스, 정비 가능 여부를 가상공간에서 먼저 검증했다"고 말했다.설계 데이터는 생산에 필요한 부품 목록과 조립 정보로 이어졌다. 어떤 부품을 어느 공정에서 조립하고 어떤 자재가 필요한지 관련 정보를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주 팀장은 "KF-21에는 1만4000여 가닥의 전선이 들어간다"며 "전선과 배관이 다른 구조물과 간섭하면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3차원 모델에서 이를 미리 찾아내면 재작업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
- ▲ KF-21가 지난해'서울ADEX 2025(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서 시범비행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1600회 비행시험 무사고 비결은전투기 개발에서 가장 긴 시간이 걸리는 과정은 시험평가다. KF-21은 비행 시제기 6대와 구조 시험용 시제기 2대를 투입해 지상시험과 비행시험을 진행했다.지상에서는 전기체 내구성 시험과 착륙장치 작동 시험, 조류 충돌 시험, 사출계통 시험, 연료계통 시험, 엔진 작동 시험 등을 거쳤다. 이후 활주로 시험과 첫 비행, 고도와 속도를 높이는 비행 영역 확대 시험, 레이더와 무장, 공중급유 시험이 이어졌다.과거에는 비행시험 일정과 시제기 형상, 소프트웨어, 무장, 시험 결과를 서로 다른 문서와 시스템에서 관리했다. 한쪽 정보가 바뀌면 다른 부서가 이를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했다. KF-21은 요구 사항부터 시험 항목, 시제기 상태, 비행 일정과 결과까지 한 체계로 연결했다. 어느 요구 사항이 어떤 시험을 통해 검증됐고 어떤 시험이 남았는지를 즉시 추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주 팀장은 "첫 비행에 나설 때부터 성공할 거란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시제기가 어떤 형상과 소프트웨어로 비행했는지, 당시 조종사와 기상 조건은 어땠는지까지 한 체계에서 관리했다"며 "잘못된 조건으로 시험하거나 같은 일을 중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KF-21은 1600여 회의 개발 비행시험을 사고 없이 마쳤다. 비행시험 완료 시점도 당초 계획보다 약 두 달 앞당겼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성과다.◆ 美 록히드마틴도 주목한 KF-21시험관리 체계성능 개량이 반복될수록 최초 개발 단계에서 쌓은 데이터의 가치도 커진다. 주 팀장은 "항공기 개발이 끝났다고 데이터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며 "체계개발부터 양산, 후속 군수지원과 성능 개량까지 같은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 디지털 엔지니어링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KAI의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력에는 미국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방산기업은 2023년과 2025년 두 차례 디지털 엔지니어링 기술 교류회를 열었다. 주 팀장은 "록히드마틴 시험평가 기술진은 KF-21의 통합 시험관리 체계를 본 뒤 실제 개발 사업에 적용한 것이 맞는지 여러 차례 확인했다"며 "자사에서도 아직 완전히 구현하지 못한 부분이라며 매우 놀라워 했다"고 말했다.유럽에서도 스웨덴 사브의 그리펜 등 최신 전투기 개발 사업을 중심으로 디지털 모델과 데이터를 통합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항공기 성능이 복잡해지고 소프트웨어 비중이 커질수록 설계와 생산, 시험 정보를 따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주 팀장은 "지금은 각 시스템을 어떻게든 연결해 하나의 정보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항공·우주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