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권오규 경제부총리'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재임시 ‘이중 플레이’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바람에 낙마한 케이스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값이 치솟는 마당에 ‘지금 집을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작 본인은 은행에서 5억원까지 신규 대출을 받아 강남 아파트를 구입한 것이 세상에 알려져 버린 것이다.

    이 전 수석이 최근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이다. 충성에 대한 ‘전형적 보은성 회전문 인사’라는 세간의 평에도 불구하고, 배신하지 않는 한 여론쯤이야 상관하지 않겠다는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인사 철학을 보여준 예다.

    노 대통령 등장 이후 줄곧 주위에서 지켜봐 온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토록 장수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권 부총리가 지난 15일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가 동시에 많이 나와 집 한채 가진 사람들이 퇴로가 없다고 하는데 서울 강남서 집 팔아 분당으로 이사하면 양도소득세를 내고도 상당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 부총리가 일부러 강남 지역을 떠나라거나 어쩌면 적대적 태도로 비쳐질 수 있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은 데는 분명 “(강남에서) 종부세를 줄이려고 이사를 가려해도 갈 수 없다는 얘기는 비싼 동네서 비싼 동네로 가겠다는 이야기다. 굳이 이사를 가시겠다면 집값이 싼 동네로 가시면 된다”고 노 대통령이 지난 2월에 한 발언을 의식했음에 틀림없다.

    권 부총리는 이런 발언을 하는 바람에 국민으로부터 재경부 홈페이지를 공격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정부가 어떻게 국민에게 집을 팔라 말라 할 수 있는가라는 힐난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실패를 특정 지역 주민에게 전가한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그럼 권 부총리는 이번 이미지 장사에서 손해를 본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눈도장 찍는 특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권 부총리가 대통령의 두터운 점수를 따고 있음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부터 시장경제론자로 알려져 있던 그가 세상이 바뀌었음을 누구보다 일찍 눈치채고 방향을 선회한 것은 아마도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시절 ‘스웨덴 모델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올린 것이 시작일 것이다.

    보고서는 평등과 복지를 실현하는 스웨덴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점을 요지로 하고 있다. 이런 권 부총리가 경제기획원 과장 시절만해도 ‘스웨덴은 평등과 복지를 앞세우다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글을 발표했던 주인공이라면 믿어지겠는가.

    그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두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진짜 이념적으로 변했을 수 있다. 자신의 경제철학이 잘못됐음을 뒤늦게 깨닫고 방향을 선회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믿기 어렵다. 그는 대통령이 미리 어떤 방향을 지시하지 않는 한 지금도 여전히 시장경제론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자제한법이나 분양원가 공개 논란 등이 좋은 예다.

    두번째는 사회 지도급 인사로서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개인의 출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권 부총리는 더욱 더 시장경제론자다. 무슨 말인가. 얼마전 작고한 미국의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 밀튼 프리드먼은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으라”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은 터무니없는 엉터리라고 꾸짖은 바 있다.

    자유인은 정부나 국가를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보지, 호의를 베푸는 시혜자로 보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숭배해야 하는 신이나 주인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따라서 정부를 그저 출세의 도구로 인식할 뿐이라면 권 부총리는 여전히 투철한 시장경제론자라는 사실을 자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