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에서 열렸던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가 지난 23일 막을 내렸다. 우리 정부와 언론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던 환율전쟁의 종식선언이 있었다’며 큰 성과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의 환율전쟁 배경을 살펴보면 ‘종전선언’의 실질적 주체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되어야 하기에 우리 정부와 언론의 자축이 성급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
‘환율전쟁’의 시작과 전개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에서 ‘환율전쟁’이라 부르는, 강대국 간의 통화 전쟁은 지난 2006년 초부터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급증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는 서브프라임모기지론(저신용자대상 후순위주택담보대출) 채권으로 인한 문제가 일어나기 전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수지 적자 원인을 분석한 결과 중국의 무차별적인 저가 상품 공세와 실물 경제와는 동떨어진 위안화 가치문제로 보고, 중국 정부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반응은 ‘절대 불가’였다. 중국 정부는 당시 위안화와 해외 통화 간의 환율을 정부가 관리하는,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1999년 WTO체제 가입 후 본격적인 고도성장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 때문에 자국의 경제성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공산당원과 그 가족 등 특권층들이 거주하는 동남쪽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을 통해 내륙의 농민공까지 잘 살게 만드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보려면 환율에 개입해 돈을 벌고 자원을 확보해야 할 시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등 서방국가는 중국의 내부 사정을 배려해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한 수준이었고, 유럽 국가들 또한 중국의 저가 상품, 가짜 상품으로 자국 제조업체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은 중국 정부에 계속 위안화 절상 압력을 행사했고, 중국 정부는 이에 반발, ‘기습공격’을 실시한다. 외환보유고 확보를 위해 갖고 있던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 수백억 달러 어치를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시장에 내다 판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이 공격에 서방 금융기관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위기의 시작은 영국의 금융가인 ‘더 시티’에서부터였다. 당시 서방 금융기관들은 미국이 발행한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일부 펀드는 고객들에게 연 20%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서방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 파생상품에 집중 투자했던 건 이 채권 발행과 유통을 총괄 관리하던 ‘프레디맥’과 ‘페니메’가 準공기업이었던 탓에 부실 우려가 다른 민간기업 채권들에 비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수백억 달러 어치의 채권을 시장에 풀자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 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채권 가격 급락은 파생상품 가격의 폭락으로 이어졌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대출도 중단됐다. 금융기관들은 이미 대출한 돈을 급히 회수하기 시작했다. 신용이 낮은 이민자들을 포함 이를 이용해 집을 산 사람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이후 이 ‘폭락 도미노’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으로까지 번졌고, 여기에 많은 투자를 했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는 결국 파산하게 된다.
‘환율전쟁’의 전환기
이 같은 월스트리트의 ‘몸살’은 ‘세계금융위기’로 발전해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남유럽 국가와 인도, 브라질, 러시아, 중국에도 상당한 손실을 입힌다. 당시까지 아시아 국가들과 신흥 개발국들은 서방 금융기관으로부터 많은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다. 특히 자원 수출, FDI(외국인직접투자) 중개에서 서방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은 러시아, 인도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한편 미국 등 서방 금융기관들도 중국의 공격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중국 당국이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하자 중국 상품들의 문제점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잘못 복용하면 죽는 ‘가짜 약’과 ‘치약’, 중금속과 금지약물이 포함된 어린이 장난감, 비위생적인 식품재료 등이 연일 전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또한 중국 정부가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자원경쟁을 벌이던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부각됐다. 기술력이 우수한 서방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녹색성장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의 물줄기 또한 2009년부터는 경화(硬化) 유통 조절을 통해 중국 자본과 상품이 지배하다시피 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로 돌아갔다. 당시 남유럽 국가는 중국과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던 좌파 정당 및 조직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해당 국가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 2009년에는 유대계 자본들도 서방 국가들의 편에 선 정황들이 나타났다. 유대계 자본들이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들 이유는 충분했다. ‘환율전쟁’이 시작될 즈음 중국 공산당 지식인들이 수많은 칼럼과 기사를 통해 ‘유대인은 세계의 착취세력’이라는 식으로 선전한 뒤 제3세계와 국제사회주의단체들을 규합하려는 시도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서방 국가의 반격으로 중국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대표 도시의 건물에서는 40% 이상의 공실률이 나타나면서 부동산 경기가 추락했고, 실물경제도 얼어붙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지방정부와 공기업에 4조 위안(한화 약 670조 원, 1위안 169원 환산)을 대출했다. 이로 인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외부에 거의 알리지 않았다.
한편 한국, 일본 등과 ASEAN 국가들은 다른 이유에서 ‘환율전쟁’을 주시했다. 중국은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부터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동남아시아 지배전략, 동북공정, 서북공정 등을 통한 역사왜곡, 주변 국가에의 대규모 이민정책 등을 통해 해당 국가에서 親中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한국, 일본 핵심인사들과의 정례 회동, 2008년 4월 중국유학생 난동, 저가 불량식품 규제에 대한 보복성 제재, 反중국 공산당 시위대에 대한 보도를 하지 말 것을 한일 언론에 요구하는 등의 압력을 통해 한일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수만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 이민자들을 동원해 해당 국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같은 중국 공산당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한국은 물론 일본, 아세안 국가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이들 국가들은 겉으로는 ‘중립’을 표하면서도 서방 국가들의 對중국 전선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
G20 재무장관 회의, '제2의 체임벌린-히틀러 회담' 되지 않도록 해야
이런 배경 때문에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이하 G20 재무장관 회의) 결과가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이다.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최대 이슈는 ‘환율정책’이었다.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경제 펀더멘털이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한다”고 합의했다. ‘시장 결정적’이라는 말은 각국 정부가 인위적인 환율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또한 그동안 중국 정부가 꾸준히 불만을 제기하던 IMF의 개발도상국 지분 6%로 확대, 기축통화의 과도한 변동성 규제, 조세피난처 등을 악용하는 ‘그림자 은행’에 대한 규제 확대 등에 대한 개혁안에도 잠정 합의했다.
이 같은 회의 합의안에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은 “환율전쟁 종전 선언이 나왔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일종의 ‘방관자’ 역할이던 한국 정부가 ‘중재’에 나서고, G20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중국과 서방 국가들 양쪽의 양보를 이끌어낸 것은 상당한 성과다. 하지만 이 합의가 현실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중국 정부가 쥐고 있다. 3조 달러 가까이 되는 외환보유고, 세계 3위의 국가 GDP 등은 중국 정부가 쉽게 포기하기 힘든 환율 전쟁의 ‘무기’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언론과 기업, 자본을 모두 통제하고 있다. 주거이전, 해외여행, 언론의 자유도 없다. 현재의 경제성장 또한 철저히 공산당 정부와 공기업 중심이다. 따라서 서방 국가들보다 ‘환율전쟁’을 수행하기 편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여기다 중국이 수 년 내 위기에 빠질 경우 ‘환율전쟁’으로 이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천즈우(陳志武·48) 예일대 교수는 지난 23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5년 내에 중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경기부양을 위해 국영기업과 지방정부에 대출해 준 4조 위안의 만기가 도래하는 3~5년 뒤 대출의 대부분이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천 교수는 중국 경제의 소프트 랜딩(연착륙) 또한 쉽지 않다고 했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하려면 공산당 정부가 정치개혁, 사유재산 보호, 공기업 민영화를 해야 하는데 이미 막강해진 이익집단이 공산당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천 교수의 주장 중 절반만 맞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이번 경주 G20 재무장관 회의 합의를 이행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는 자칫 ‘제2의 체임벌린-히틀러 합의’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자랑하기 위해 G20 재무장관 회담이 ‘대성공’이라고 섣불리 자축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