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두 달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면서 3천억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면서 유로화와 엔화 등으로 보유한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늘어난 결과라고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다만 외환보유액 규모가 비슷한 다른 신흥시장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늘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지위가 외환시장 개입(달러화 매수)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달러 약세에 외환보유액 날로 증가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10월 말 현재 2천933억5천만달러로 한 달 전보다 35억7천만달러(1.23%) 증가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외환보유액 집계가 시작된 1971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올해 들어 벌써 네 번째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외환보유액이 증가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미 Fed가 대규모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 정책을 펴면서 달러화 약세를 유도해 유로화와 엔화 등이 강세를 보였고, 이들 통화로 보유한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뉴욕 종가 기준으로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는 각각 한 달 전보다 2.1%, 2.0%, 3.7%씩 올랐다.

    여기에 외환보유액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운용하는 데서 얻는 수익이 많아지는 것도 한 요인이다.

    한편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른 금 보유량은 장부가 기준 8천억달러로 변화가 없었다.

    ◇올해 중 3천억달러 넘어설까

    달러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도 이대로 가면 올해 안에 3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한은 국제국 문한근 차장은 "외환보유액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는 맞다"며 "하지만 앞으로 달러화를 비롯한 국제 통화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규모는 유동적이다"고 말했다.

    무역거래와 자본거래를 통해 우리나라로 달러화가 계속 흘러드는 것도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 흑자와 증권시장 자금 유입으로 원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제어하려면 당국이 시장에서 달러화를 일부 사들여 외환보유액으로 쌓는 `미세 조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환율 전쟁'의 중재안을 도출해야 하는 G20 의장국으로서 드러내놓고 시장에 개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전 세계 외환보유액 상위 10위권 국가 가운데 9월 중 증가액은 우리나라가 44억달러로 가장 적었다. 중국이 3분기 중 월평균 647억달러 증가한 것을 비롯해 공식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일본이 한 달 사이 395억달러를 쌓았고 스위스, 브라질, 러시아 등도 약 100~200억달러씩 늘었다.

    ◇`적정 외환보유 규모' 논란 불거지나
    외환보유액이 3천억달러에 육박하면서 `적정 수준'이 다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금융위기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외환보유액이 우리나라의 대외 지급능력을 보증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긍정적이지만, 그렇다고 늘어나는 게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다.

    외환보유액이 늘수록 여기에 대응해 원화가 시중에 풀리게 되고, 이를 다시 흡수하려면 통화안정증권 등을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통안증권의 이자 지급액은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의 이자 수입액보다 많기 마련이어서 `역마진'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통안채의 이자 지급액만큼은 고스란히 시중에 추가 유동성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어 당국의 정책 방향과 어긋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외환보유액만 많이 확보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운용 수지 측면에서도 손해 보는 요인"이라며 "자본 유출입 규제에 대해 여러 국가와 보조를 맞추면서 국제 금융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