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안고 인수' 속여 운영권 강탈, 물품 땡처리경영난 업주 골라 범행…일당 3명 구속, 14명 입건

  • 전 중소마트 업주인 정모(43)씨는 지난해 10월15일 얘기만 나오면 가슴을 친다.

    인천 부평구에서 운영하던 마트의 매출이 부진해 빚이 늘어가던 그는 당시 '새 출발 하자'고 마음 먹고 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서모(48)씨 등이 정씨 채무를 안고 1억9천여만원에 마트를 인수키로 한 것. 이들은 인수대금을 주기 전에 사업자 이름을 바꿔달라고 해 정씨는 이를 들어줬다.

    결과는 악몽 그 자체였다. '업주가 바뀌었다'며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이 들이닥쳐 매장 계산대를 차지했다.

    사내들은 가게 상품을 헐값에 내놓는 속칭 '땡처리'로 마구 팔더니 진열장이 텅 비자 계산기와 냉장고 등 비품도 처분했다.

    인수대금 지급은 계속 미뤄졌고 정씨가 항의하면 사내들은 '가만히 있으라'며 협박과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마트는 매장 보증금까지 사라진 채 껍데기만 남았다. 새 업주는 '나도 이름만 빌려준 채무자라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경영난을 겪는 마트를 인수한다고 속여 상인들의 재산을 남김없이 거덜내던 전문 사기단이 경찰에 적발됐다. 피해자 중 2명은 충격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기와 공동공갈 등 혐의로 서씨와 이모(34)씨 등 3명을 구속하고 홍모(44)씨 등 공범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서씨 등은 수도권 마트 6곳의 경영권을 빼앗고 상품과 시설물을 처분해 2008년 6월부터 지난 1월 사이 모두 15억5천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와 인수계약을 하자마자 사업자명(名)을 계속 바꾸고, 이름만 빌려주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계약금 청구를 어렵게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구속된 이씨는 경찰 관리 대상인 한 지방 폭력조직의 행동대장 출신으로, 마트의 처분 작업을 지휘하며 밀린 임금을 달라는 매장 직원 등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이들에게 서울 방배동 마트를 빼앗긴 한모(28)씨는 사업자 이름이 바뀐 지 이틀 만에 자신의 예전 매장 뒤편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다른 피해 마트의 직원이던 박모(39)씨는 서씨 등에 속아 외상물품 결제서에 사인을 했고 도매업자들의 대금 독촉에 시달리다 지난해 5월 결국 자살했다.

    경찰 관계자는 "SSM(기업형슈퍼마켓)과 경쟁 등으로 경영난에 빠진 마트가 많다는 점을 노린 범죄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일당은 고소를 당해도 결국 민사소송이 돼 구제가 어렵다는 점도 악용했다"고 설명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