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적 공정성에 대한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은 “각자 정당한 자기 몫만큼 누린다”는 것과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큼은 누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서로 나누면 개별 몫이 반드시 줄어들어야 할 때 ‘정당한 자기 몫만큼 누리’려면 그만큼의 사적 소유를 전제해야 가능하다.
    또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사적 소유가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경제적 공정성에 대한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財産權(property right)과 최소한의 개인별 기본적 소유의 개념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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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정당한 자기 몫’은 우선 획정된 재산권이 정당하고, 그 다음에 재산권 구조를 바꾸는 경제생활의 과정에서 어떠한 재산권 침탈도 일어나지 않아야 보장된다. 시장교환은 적법한 재산권을 보유한 사람들이 상품과 대금에 대한 재산권 양도에 합의하는 행위이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공동생산에서도 사전에 개인별 역할과 그에 대한 보상의 크기를 합의해야 한다.

    이러한 합의들은 계약으로 정리되고, 정부는 합법적으로 체결된 모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함으로써 그로부터 새롭게 획정된 재산권을 보호한다.

       시장교환이나 공동생산이나 각자가 얻을 몫은 당사자 간의 합의로 결정하는데 합의를 유리하게 이끄는 힘은 협상력(bargaining power)이다. 만약 합의과정에서 작용한 협상력이 공정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합의한 몫을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정한 협상력은 합의의 정당성에 대한 기본요건이다.

       같은 종류의 상품 또는 역할을 공급 또는 제공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경쟁하기 마련이다. 내가 기술개발 노력에 성공하여 좋은 품질의 제품을 염가에 공급하면 고객들은 나에게 몰려오고, 나의 생산성이 뛰어나면 여러 공동생산 팀들은 서로 다투어 나를 초빙한다. 사람들이 내 경쟁자들을 제치고 나하고만 거래하려고 하면 나는 강한 경쟁력을 갖춘다. 경쟁력이 강하면 나는 여러 거래희망자들로부터 가장 유리한 고객을 선택하여 거래할 수 있지만 내 상대방들은 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경쟁력이 강한 나는 강한 협상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한 협상력에 바탕한 시장의 소득분배는 공정하다.

       여러 대안적 거래상대방 모두에게 경쟁력 강한 기업이 행사하는 강한 협상력은 그 기업만의 작품이 아니라 거래상대방들이 자발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내가 기술개발 또는 생산성 향상에 노력을 기울여 얻은 강한 협상력도 더 성공적인 노력을 기울인 경쟁자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소멸해버리는 만큼, 내 협상력은 나만의 작품이 아니라 거래상대방들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 시장거래과정의 협상력을 특히 시장력(market power)이라고 한다.

       모든 고객들이 나하고만 거래하려고 하면 나는 강화된 경쟁력으로 시장을 독점함으로써 독점적 시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고객들의 선택이 만들어준 독점인 만큼 이 독점적 시장력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병에 의한 독점이나 가격 담합은 고객들의 대안적 거래기회를 인위적으로 없애버리는 까닭에 경쟁상태에서 고객들의 자발적 선택이 만들어준 독점과는 다르다. 부당한 독점력이 작용한다면 매매쌍방의 합의를 거치더라도 그렇게 결정된 독점가격은 수요자의 재산권을 침탈한다.

       공동생산의 경우에도 협상력만 정당하다면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합의한 개별 몫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당한 협상력 행사에 따라 합의한 몫이 생산에 기여한 몫보다 작다면 그 생산요소는 다른 공동생산팀에서 금방 초빙해 갈 것이다. 대안적 기회가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강화되고, 협상력도 함께 강화되는 만큼 재협상을 통하여 자신의 몫을 생산기여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시장은 이처럼 합의한 몫과 생산기여분이 서로 수렴하도록 이끌어 간다.

       그러나 시장은 경쟁 실패자와 재난피해자도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도록 하고 사회적 약자의 부당한 차별을 해소하는 데 철저히 무력하다.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큼 누리는 것’을 경제적 공정성의 조건으로 파악하는 나라에서는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두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소득재분배를 시행한다. 애초의 재산권 구조와 합의과정의 협상력이 정당하다면 시장이 결정한 각자의 몫도 정당한 재산권 행사의 결과로서 공정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각각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만큼 누려야’ 경제적 공정성이 달성된다면 시장의 공정한 분배는 빈곤층의 ‘정당한 몫’을 고소득층이 ‘빼앗아’ 간 결과와 마찬가지이다. ‘각자 정당한 자기 몫’과 ‘모든 사람의 인간다운 생활’이 함께 공정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복지는 공정성 아닌 배려의 차원에서 시행해야

       소득재분배적 사회복지는 결과를 시정한다. 그런데 경쟁 실패자, 재난피해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의 협상력을 사전에 적절히 강화해주면 이 소득재분배 조치가 시현하는 소득분배를 시장도 만들어낼 것이다. 노동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과 고용보호법제는 실제로 사전에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해 주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화된 협상력은 시장에서 각자 스스로 노력하고 거래상대방들이 자발적으로 부여하는 협상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당사자들이 서로 인정한 시장 소득분배의 공정성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나선 협상력 지원은 지원대상과 지원규모를 적절하게 결정하여 추진해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앞세우는 데 함몰되면 지원대상과 지원규모, 그리고 비용부담주체의 결정에서 자주 오류를 범한다. 수도권이 지방을 보조하기 위하여 도시 서민이 농촌 부유층을 지원하고, 달동네 주민이 낸 전기료가 고급 아파트 주민의 난방비를 보조하며, 어려운 집 학생의 지하철 요금이 부자집 할아버지의 무료승차를 지원한다. 기업이 고전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그 제품을 외면하기 때문인데 멀쩡히 잘 하는 기업을 내쫓고 고전하는 불량기업이 계속 살아남도록 조장한다.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의 생계는 도와주어야 하지만 사람들이 외면하는 생산활동까지도 그대로 계속하도록 도와줄 이유는 없고 어려운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의 최근 논쟁도 같은 주제다. 자신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혜택을 넓게 제공하자는 것이 보편적 복지이고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공하자는 것이 선택적 복지이다. 초기 재산권 구조와 현실의 협상력이 공정하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재분배를 통하여 결과를 시정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고쳐야 할 것은 공정하지 못한 초기 재산권과 협상력인데 고쳐야 할 것은 방치하고 결과를 간섭하려면 차라리 시장경제를 포기하는 것이 옳다.

       사회복지는 공정한 협상력에 따라 이루어진 시장의 합의까지도 부정하는 것인 만큼 협상력 왜곡의 폭을 필요에 맞추어 최소화하는 것이 옳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앞세울수록 경제생활을 이끄는 협상력은 더 크게 훼손당한다. 경쟁실패자에 대한 복지혜택을 실패자의 권리로 인정한다면 사람들은 경쟁실패를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몫을 누리는’ 사회복지는 반드시 필요하고 정부의 강제력 동원도 당연하지만 공정성보다는 따뜻한 배려의 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이 옳다.

    <이승훈 /서울대명예교수, 한국선진화포럼 이사>

    (출처: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 포커스'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