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쁜 자주(自主) 

                                             양  동  안 

    이집트의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민중봉기와 국제적 압력에 떠밀려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무바라크는 그 동안 대통령직 사임을 거부하면서 그 명분으로 ‘자주’를 내세웠다. 그는 사임하기 전날인 10일 밤에도 TV방송 연설에서 대통령직의 사임을 거부하면서 “나는 외국의 강권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혹은 민족의 자주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독재를 실시하고 독재자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독재자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도 민족자주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가족 독재체제를 만들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인류사적 대발명이라고 선전하는 주체사상도 독재의 명분으로 내세운 자주를 어거지로 부풀린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도 자주가 독재의 명분으로 이용된 적이 있다. 유신시기 당시의 집권세력은 서양의 자유민주주의라는 옷은 한국인의 체격에 맞지 않은 것이며, 한국에서는 한국인의 체격에 맞는 한국식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와 같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을 민족 주체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했던 한국식 민주주의란 곧 유신 독재를 말하는 것이고 민족 주체성이란 민족 자주를 말하는 것이다.

      자주 혹은 주체성이란 일반론적으로는 좋은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주체성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주나 주체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주가 악행과 연결되지 않을 경우만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가 주체성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악행을 할 경우 그 자주는 곧 악이다. 그런 자주는 ‘나쁜 자주’이며, 그런 자주적 악행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집단적 노력이나 국제사회의 협동 노력에 의해 저지되고 징벌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상식적인 이치를 외면하고 자주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대표적 사례로는 종북세력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가족독재를 자행하고 있는 북한정권을 우리 민족의 자주적 전통을 계승한 집단으로 미화하면서, 북한정권의 자주성만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우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고, 대한민국의 경제번영을 위해 한미FTA를 비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노예들’이라고 비난한다.  

    이 사람들은 주민을 굶겨죽이면서도 핵무기를 만들고 대남 군사도발 책동을 계속하는 북한정권의 ‘자주적 악행’에서 ‘악행’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주’만을 따로 떼어내서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악행’마저도 ‘자주’의 불가피한 파생물로 감싸준다.

    이 사람들의 행태는 자주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에 대해서 그의 살인행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주적 인간’이라고 칭찬하며 그 범인의 살인을 ‘자주’의 불가피한 파생물이라고 변호는 것과 동일하다.
    이 사람들이 미국을 제국주의국가라고 비난하고 미국과의 군사동맹·경제협력 강화를 추구하는 것을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노예적 행동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의 자주적 악행을 저지하는데 앞장서고 있으며 미국만이 북한의 자주적 악행을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오래 동안 강대국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 자주라면 일단 좋게 평가하며, 우리 국민은 오래 동안 독재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자주·자율·자치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 국민의 이런 심리적 경향은 북한정권의 ‘나쁜 자주’, 범죄적 자주를 민족의 기상을 살리는 자주로 왜곡하는 북한정권과 남한 종북세력의 책동이 사기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나쁜 자주, 범죄적 자주를 자행하는 북한정권은 중국의 지원 때문에 쉽게 붕괴될 것 같지 않으며, 우리의 군사력으로 북한을 궤멸시킬 수도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아쉬운 대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대한민국은 나쁜 자주를 자행하는 북한정권과 대화도 하고 거래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과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불쾌한 대화와 거래를 진행하지만 대한민국 내부에서 북한의 나쁜 자주를 오로지 자주라는 이유로 칭찬하는 종북세력을 관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주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저질러온 북한정권의 악행을 자주라고 칭찬하는 것은 심리적으로는 악행을 자행하는 것보다도 더 사악한 것일 수 있다. 정작 자주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내심으로는 자기의 악행에 대해 떳떳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런 악행을 ‘자주’라고 칭찬하는 자는 악행을 자행하는 자가 가질 수도 있는 떳떳하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마저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종북세력의 그러한 양심마비적인 사악한 행위가 확산되면 북한정권은 남한을 접수하려는 망상과 북한의 악행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민족자주의 이름으로 좌절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은 대한민국과의 대화와 거래에서 부당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남한에서 북한의 나쁜 자주를 자주라고 칭찬하는 자들은 심리적으로 북한정권보다 더 사악한 자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북한을 상대로 한 대한민국의 불쾌한 대화와 거래도 방해할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그들을 관용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