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의 대홍수 시대, 노아의 지혜를 가르치자
    <젊은이의 발언/한국선진화포럼 2월 주제 ‘오늘의 갈등은 내일의 창조력이다’>

    명화연(선진화홍보대사 7기, 서울대학교)

    왜곡․편항된 미디어 컨텐츠가 난무하고, 이것이 웹상에서 1인 미디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며 사회적 혼란을 빚고 있다. 허위정보를 통해 국가적 혼란을 야기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정보가 우리 사회에서 대중을 얼마나 쉽게 선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이에 따라 허위정보로 인한 국가적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미디어 컨텐츠의 진위를 판별하는 품질 보증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최근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령 교수는 ‘정보의 대홍수’ 속 ‘노아의 방주’가 필요하다는 촌철살인 같은 비유를 사용했다. 즉, 난무하는 미디어 가운데에서 대중을 선동하지 않는 정확한 사실만을 걸러서 제공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디어 품질 보증 과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미디어 다양성을 통한 상호 비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미디어의 편파․왜곡 보도에 대하여 다른 미디어가 비판하는 미디어의 상호 비판 과정을 통해 허위보도가 바로 잡힐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상업주의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디어의 특성상 이를 기대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디어는 상업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중의 구미를 당길 만한 컨텐츠를 담아야 하기에 대중 앞에 불편한 진실을 제시하려면 경쟁에서 밀릴 위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따라서 편파․왜곡 보도 속에 숨겨진 사실이 대중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성격이라면 미디어조차 미디어를 비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컨텐츠를 생산하는 집단들이 하나의 이익집단을 형성할 경우 정직한 상호비판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점이 드러나며 미디어 품질 보증 과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 기본적으로, SNS를 통한 1인 미디어까지 가세해 쏟아지는 정보들을 모두 확인하여 허위와 진실을 가려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의 방대함 때문에 모든 미디어를 거르는 것(filtering)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사회적 오해를 야기하고 있는 몇 가지 현안 이슈만이라도 걸러내는 부분적인 필터링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혼란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러한 부분적인 필터링의 시도가 이제껏 민간 차원에서 여러 집단을 통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 차원의 미디어 모니터링 기관은 중립성을 지키기 어려워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는 문제를 초래했다. 각 모니터링 기관이 자기 입장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향된 모니터링을 하게 되자 미디어 모니터링에 대한 모니터링이 다시 필요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이 기관들은 자기 기관과 관련된 특정 분야의 미디어 컨텐츠만을 모니터링함으로써 그들의 입장과 관련 없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는 문제를 초래했다. 자기 기관의 관심사와 부합하는 미디어 컨텐츠에 대한 비판만 겨냥하다보니,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한 균형 잡힌 비판이 부재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민간 모니터링 기관은 공정한 미디어 품질 보증 기관으로서 기능하는 데에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국가 차원의 미디어 모니터링 기관이 생긴다면 이는 군부 정권의 언론 탄압을 연상시키는 불유쾌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 품질보증과정을 어떻게 실행할지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혹자는 미디어 모니터링 기관의 구조적 문제를 떠나 우리나라에 전문가 집단이 부재하기 때문에 미디어의 대중 선동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전문가 집단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전문가집단이 부재한 것인지 엄연히 존재하는 전문가집단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지난 광우병 소동 때에도 이것이 허위보도임을 알았던 전문가 집단이 있었지만, 이들은 언론의 압력과 눈치에 의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현재보다 전문가 집단 층이 두터워진다 하더라도 이들이 언론의 맹비난을 두려워하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결국 근거 없는 언론의 선동을 견제할 수 없게 될 것이기에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는 구조적 문제 해결이 중요한 문제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미디어가 견제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 집단으로 대두할 때 대중은 그래도 사법기관이 미디어의 지나친 방종을 적절히 제재해주리라 예상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허위 보도에 대한 처벌 조항이 법에 명시되어 있다면 미디어 권력의 횡포를 막을 마지막 보루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도 법에 따르지 않고 사법관의 정치적 성향에 휘둘리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이제는 법조차도 마지막 보루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사법부마저 미디어의 독주를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현재 미디어 필터링은 결국 미디어 소비자인 대중의 몫이 되었다. 즉, 우리 사회에서 쇄도하는 미디어 컨텐츠에 대중이 휩쓸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이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필요성 제기에 그칠 뿐 정책적, 실천적 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것 같다.
    정규 교과로 편성될 필요성까지도 간혹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그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대중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며, 대중 교육을 위해서는 이것이 공교육 과정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논의가 시급하다.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정규교과로 편성된다면 다음과 같은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미디어를 비판적 눈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함께 다양한 미디의 편파․왜곡 보도 사례를 직접 보여주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이러한 보도가 일으켰던 피해들을 설명하며 미디어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위해를 끼칠 수 있는지를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제시할 사례가 편중되지 않도록 국정 교재를 편성하고 TV, 라디오,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은 훈련을 통해 길러짐으로 학생들의 학년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진행되게 해야 한다. 이 때 나이에 따라 학생들이 자주 접하며 많은 영향을 받는 미디어 컨텐츠가 무엇인지 분석하여 학습이 생활과 연계될 수 있도록 하여 효과의 극대화를 노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과정에서 교사의 정치성향이 개입되지 않도록 엄격히 지침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교사의 특정 정치 성향을 답습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교사의 자질 검증 및 관리 체계가 잘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정보의 대홍수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명 노아의 방주가 필요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홍수에 쓸려 내려갈 때에 방주에 탔던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살아남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노아의 방주가 결코 모든 사람을 살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이, 미디어 모니터링 기관이 대중을 미디어의 홍수로부터 휩쓸리지 않게 돕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따라서 대중이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로부터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 개개인이 방주를 짓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의 대홍수라는 위험 상황을 인식할 수 있도록 대중을 가르쳐야 하며 이에 대비한 자기 자신의 방주를 지어내도록, 즉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았던 노아의 지혜를 가르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