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제 몫을 다함으로써 특별사면에 따른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제 어떤 행보를 취할까.

    이 회장은 유치 성공의 공(功)을 먼저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이면서도 지난 8일 귀국하면서 '마음의 변화는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훨씬 가벼워졌다"고 답해 그간 심적 압박감이 엄청나게 컸다는 점을 인정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도 "누구보다 열심히 유치 활동을 했고, 마음의 짐을 크게 벗은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앞으로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게 지원하면서 삼성 내부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삼성 안팎의 관측이다.

    ◇ '깨끗한 조직문화' 박차 가한다 = 이 회장은 '최근 이례적으로 일부 사장단 인사가 있었는데 후속 인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수시로 하는 거니까 언제 있다 없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마다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연말연시 정기인사 때 승진과 퇴진을 결정하던 삼성의 인사 방식이 임직원 부정부패가 적발됐을 때 관리 책임을 묻거나 특정 사업 부문의 실적이 극히 저조할 때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 수시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삼성 미래전략실의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와 계열사별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자체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경질되거나 좌천되는 최고경영자(CEO)나 임직원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이런 의지는 언제라도 옷을 벗거나 사표를 쓸 각오로 일하라는 뜻으로 삼성 조직 전반에 엄청난 긴장감을 줄 것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삼성은 최근 계열사별로 감사팀의 진용을 재정비해 임직원 비리나 업무 태만 사레를 샅샅이 훑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호 부사장 체제로 탈바꿈한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은 현재 삼성LED와 삼성서울병원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지성 부회장 직속의 기존 감사팀 외에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대규모집적회로(LSI), 액정표시장치(LCD) 등 부품사업을 전담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사업총괄 내에 권오현 총괄사장 직속의 감사팀을 신설하고 황득규 전무를 감사팀장으로 선임했다.

    일부 계열사는 상무급이던 감사팀장의 직급을 상향조정해 삼성전기는 김영욱 전무를, 삼성생명은 곽홍주 전무를 각각 임명했고 삼성화재는 감사팀장을 이석한 상무로 교체했으며 다른 계열사도 감사팀 인원을 2~3명씩 늘렸다.

    한 계열사 관계자는 "이 회장이 감사팀의 온정주의를 질타한데다 '부정부패 일소에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해봐야 안다'고 했고, 미래전략실과 각 계열사 감사팀 진용이 새로 갖춰진 만큼 뭐라도 잡아내려 하지 않겠느냐"며 "엄청난 인적 쇄신의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미래전략실의 감사·인사팀장을 교체해 경각심을 높이는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모든 계열사에서 사소한 부정·비리나 나태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채찍질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 삼성전자 위기에서 구한다 = 삼성전자의 상반기 잠정 실적은 매출은 75조9천9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6조6천500억원으로 29.4% 줄었다. 영업이익이 3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

    세계 경기가 예상만큼 회복되지 않으면서 TV, PC, 생활가전 등의 판매가 부진하고 부품인 D램, 낸드 플래시, LCD 등의 가격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데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마냥 선방했다고만 해석하기도 어려운 실적이다.

    삼성은 이에 따라 이례적으로 사업연도 중간에 조직을 일부 개편하고 경영진을 교체하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했다.

    이 회장은 최근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삼성전자의 상반기 실적은 조금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하반기 경영 전망에 대해선 "계획대로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상반기 실적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내 그에 따른 조처를 한 만큼 하반기 목표와 연말 인사 잣대로 '계획대로 될 것'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성전자는 11일부터 사흘간 수원디지털시티와 기흥나노시티에서 개최되는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한다.

    회의에는 최지성 부회장, 이재용 사장 등 모든 경영진과 해외 법인장 등 400여명이 참석한다.

    이어 18일부터 29일까지 수원디지털시티에서 열리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통해 삼성전자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향후 나아갈 바를 모색할 예정이다.

    이 회장이 이 행사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왔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꼭 참석해온 만큼 올해도 전시회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4월21일 처음 출근한 이래 매주 두 차례 정기적으로 회사에 나와 42층 집무실에서 근무하는 관행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순택 미래전략실장도 '이 회장이 앞으로도 계속 출근하느냐'는 물음에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이 미래 먹을거리로 정한 5대 신수종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하는 일도 오너인 이 회장이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 경영권 승계 해법 찾는다 = 이 회장이 사무실에 정기출근하면서 그룹 장악력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삼성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도 이 회장에게 당면한 문제다.

    당장 내년 4월까지 삼성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 기업인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카드 지분 25.64% 가운데 20%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카드는 에버랜드 1대 주주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대한 법률(금산법) 규정에 따라 지분을 5%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지분 소유 구조는 삼성카드 외에 이재용 사장 25.1%,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및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각 8.37%, 한국장학재단 4.25%, 삼성SDI·삼성전기·제일모직 각 4%, 이 회장 3.72%, 삼성물산 1.48% 등으로, 삼성카드와 장학재단 지분이 아니더라도 경영권 행사에 큰 문제는 없지만, 삼성은 처분 방식을 놓고 연구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