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재정 속 통화긴축 … 엇박자 정책이 시장 신뢰 깎아단기 개입 아닌 구조 개혁 없인 환율 안정 지속 어려워RIA·세제 혜택도 실효성 논쟁 … 본질은 외환보유 취약"한국도 금리 무력 위험 … 재정정책 근본 처방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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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기묘한 역설에 빠졌다. 정부는 국채 발행·소비쿠폰·재정 확대로 돈을 풀고 있고, 한국은행은 물가·환율을 잡겠다며 금리를 움켜쥔 채 '선제 인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쪽은 가속페달을 밟고, 한쪽은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가 이어지면 일본처럼 금리를 올려도 환율을 못 잡는 '정책 무력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최근 일본은행(BOJ)은 30년 만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엔화 가치는 157엔선으로 약세가 심화됐다. 금리 정책 신호가 시장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금리를 올렸지만 재정 확대로 시중 유동성이 유지되고, 추가 긴축 의지가 보이지 않자 투자 자금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갔다. "금리를 건드렸는데 효과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 이유다.

    한국도 구조가 다르지 않다. 정부는 경기·내수 부양을 명분으로 소비쿠폰, 재정 지출 확대, 국채 발행을 늘렸고 내년도 예산 역시 확장 기조를 유지한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가계·기업은 부담이 커지고, 금리를 내리면 유동성이 더 풀려 환율·물가 압력이 커진다. 결국 정책 수단이 서로 상쇄되는 역설적 환경이다.

    실제 외환시장은 이를 이미 경험했다. 원·달러 환율은 1480원을 돌파하며 '1500원 공포'까지 거론됐다. 뒤늦게 정부와 한은의 구두개입·세제 카드·환헤지 지원이 투입되자 1450원대로 내려왔지만, 이를 안정 전환으로 보려는 시각은 드물다. 외환보유고가 BIS 권고 수준(9200억달러)의 절반인 4300억달러에 그치는 것은 시장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리기 위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신설해 양도세를 면제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 논쟁이 뒤따른다. 해외주식을 팔아 국내 주식에 일정 비율 이상 투자할 경우 양도세를 최대 100% 감면해 주지만, 변동성이 높은 국내 증시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는 조건이 진입 허들을 높인다. 개인 환헤지 상품 개방 역시 수수료 부담과 구조 난해성으로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원·엔 상관계수가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점 역시 부담 요인이다. 엔화가 흔들리면 원화도 동조 약세로 움직이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해외 자금 유출·환율 민감도·기축통화 의존도 등 구조적 요인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선제적 대응 타이밍을 확보하지 못하면 '금리 → 환율 → 물가' 전이 고리가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

    즉 확장재정이 지속되는데 금리는 움직이지 못하면 금융시장은 결국 대외 변수에 더 민감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엔저-원저 동조화가 강화된 상태에서 달러 강세가 재점화되면 원·달러 환율 1550원 전망도 나온다. 돈은 풀리고 금리는 묶여 있는 기형적 국면이 길어질 경우 통화정책의 존재 의미 자체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도 금리를 통해 물가·환율을 조절하는 전통적 통화정책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정책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금리 인하·동결 모두 시장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금리 카드가 '쓰나마나한 정책'으로 평가되면, 한국도 원화 안정 수단이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한국 외환보유액이 BIS 권고치에 크게 못 미는 상황에서 구두개입만으로 환율 안정은 불가능하다"며 "서학개미 탓으로 돌린 정부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구조개혁·재정정책 등의 근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