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재정 위기 해법으로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유로존이 이를 막으려 노력해도 결국 그리스 디폴트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금융시장 일각의 일관된 시각과 맞물려 디폴트 임박설을 고조시켰다.

    물론 유로존을 이끄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디폴트는 재정 위기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모습이다.

    ◇ `질서있는 디폴트(orderly default)' 불가 = 그리스 디폴트 시나리오는 형식적으로는 `질서있는 디폴트'와 `통제되지 않은 디폴트'로 나눌 수 있다.

    메르켈 총리는 전날 "지금은 회원국의 `질서있는 디폴트'를 허용하는 체계가 없다"면서 그런 형태의 디폴트는 유럽 상설 구제금융체계인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출범하는 오는 201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국가부도에 따른 영향들을 최소화하는 대책들을 미리 준비한 다음에 디폴트 수순을 밟는 `질서 있는 디폴트'는 지금으로선 고려 가능한 대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그리스 디폴트는 유로존 전체와 나아가 세계 금융시장에 아무런 통제 장치 없는 파급 효과를 몰고 오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특히 그리스 국가부도는 유로존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그 파급 효과는 그야말로 `시계 제로' 상태다.

    올리 렌 유럽연합(EU)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은 14일(현지시각) "어떤 방식을 생각하든, 그리스 디폴트나 유로존 이탈은 그리스 뿐만 아니라 EU 모든 회원국에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비용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 유로존 해체 위기 = 그리스가 부도에 빠지면 그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포르투갈과 아일랜드 등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들이 당장 직격탄을 맞을 게 분명하다.

    나아가 그리스 재정 위기에 흔들거리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도 충격파가 미칠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유로존 정상들은 그리스 디폴트가 일어나면 `도미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스페인 은행권은 포르투갈 익스포저(위험노출) 비중이 높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은행권은 스페인 익스포저 비중이 높은 등 복잡하게 얽힌 유럽 은행들의 대출구조는 도미노 효과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그리스에 150억유로를 물린 프랑스 은행들이 신용등급 강등 사태를 겪고 있다. 무디스는 이날 프랑스 제2, 제3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과 크레디트 아그리꼴 은행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강등했다. 그리스 국채를 160억유로 보유한 독일 은행권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최근 프랑스 은행들의 주가가 그리스 디폴트 우려 고조로 폭락한 현상은 이런 시나리오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아울러 유로존 내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가 전날 매각한 국채 39억유로의 발행금리가 5.6%로 1999년 유로존 가입 이후 최고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치른 대목은 이탈리아 역시 그리스 디폴트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방증한다.

    무려 1조8천억유로에 달하는 채무를 지닌 이탈리아 정부가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는다면 유로존은 더는 스스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을 맞는다.

    출범 12년째를 맞은 유럽연합 공동통화체계인 유로존이 종말의 위기에 직면하는 셈이다.

    물론, 유로존이 일부 회원국들을 축출시키고 유로존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지만, 유로존 이탈 역시 `도미노 효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인식에다가 유로존 이탈의 비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돼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다..

    유럽 투자은행 UBS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유로존 해체의 비용은 천문학적"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리스 같은 취약한 회원국이 유로존을 이탈할 경우 이탈 첫해에만 이탈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의 40~50%, 이후 몇년 동안 매년 20% 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국제사회에서 발휘한 유럽의 `소프트 파워' 영향력이 끝날 것이며 역사의 경험으로 볼 때 전체주의나 군부 정부의 출현, 혹은 내전 발발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유럽발(發) 리먼브러더스 사태 = 도미니코 롬바르디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사는 "유로존 재정 위기가 이미 `전이 효과'를 막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번졌다"고 지적했다.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할 경우 세부 예상 상황을 보면 그리스 정부는 일단 자국 국채를 보유한 민간채권단에 새로운 채무조정을 요구하게 된다.

    유럽연합·국제통화기금(IMF) 등이 2차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과 병행해 추진돼온 기존 채무조정 협상은 무위로 돌아간다. 이 협상에서 민간채권단은 21%의 손실을 본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가 부도를 선언한 후 요구할 채무조정은 민간채권단 손실폭을 이 보다 훨씬 확대할 게 분명하다. 손실률이 50%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만기도래하는 그리스 국채 규모는 약 1천500억 유로로 알려졌다. 50% 손실을 가정하면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금융권 전체로 약 700억 유로의 상각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6월 실시된 90개 유럽 은행에 대한 재무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에서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가 25억유로로 나왔던 점에 비춰보면 그리스 디폴트가 유럽 은행권에 미칠 손실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여기에 도미노 효과가 초래할 다른 회원국들의 디폴트까지 가세하면 유럽발(發) `제2의 리먼브러더스(LB)' 사태를 점치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