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왜 떴을까?
장하준 교수의 새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로 등극했다. 경영ㆍ경제 분야 도서가 이렇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사들은 어려운 경제 문제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는 장하준의 글 솜씨를 이유로 들고 있다.
전문가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대중의 삶과 관련되고 관심과 부합되는 내용과 엮어서 경제학의 문외한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 장하준의 시도는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한 예로 <오마이뉴스>는 장하준을‘아카데미에서 저잣거리를 향해 자신의 보폭으로 성실하게 걸어 나오는 경제학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이 돌풍을 일으킨 진짜 원인은 따로 있어 보인다. 단순히 장하준 교수의 글쓰기 실력이 훌륭해서라기보다는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더블딥, 유럽의 유로존 위기 등 세계 경제 침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 세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과연 옳은가에 대한 대답을 대중들은 목말라했다. 장하준은 현시대의 물음에 전문가로서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장하준에게 속은 23가지?
이 책에 대한 찬사만큼 비판의 목소리 또한 거세다. 이 책이 포퓰리즘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을 정치적이라고 비판하는 장하준 역시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비판하고 있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 중 상당수가 왜곡돼 있어 장하준이‘그들’의 주장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책에서 제시된 자료마저도 일반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자신에 주장에 맞게 의도적으로 단편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장일단이 있는 신자유주의를 단점만을 부각하여 제시함으로써 대중들이‘신자유주의는 그릇된 체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어떠한 맥락에서 이러한 비판이 나온 것인지 하나씩 살펴봤다.
장하준은 포퓰리스트?
장하준 교수가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는 첫째로 대중의 애국심, 또는 부자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여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내리게끔 선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Thing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에서 기업의 자국 편향성을 이야기하며 외국인 투자는 환영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논지를 전개했는데 이는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해 그들이 외국인 투자에 대한 반감을 갖도록 선동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부자가 더욱 잘 살게 된다고 하여 일반 대중들이 잘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Thing 13)하거나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은 하는 일에 비하여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주장(Thing 14)하는 것은 부자에 대한 반감만을 자극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부자를 존경의 대상이 아닌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장하준이 제시하는 23가지는 대부분 대안 없는 비판에 머물고 있다. 예를 들면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Thing 13)’는 주장은 그 자체만을 보면 옳은 측면도 있으나, 약간 비틀어 생각하면 부자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Thing 17)’라는 부분 역시 교육을 덜 시킨다면 나라가 더 잘 살게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대안 없는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장하준, 자유주의 경제학을 오해하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장하준 교수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장하준 교수의‘23가지’중 최소한 8가지는 그가 자유주의 경제학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특정 기업에 좋은 일을 하라고 주장(Thing 18)하지 않으며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다(Thing 9)고 이야기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 경제학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은 장하준 교수 또한 그럴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전인수격 통계 자료 등 제시
몇몇 전문가들은 장하준 교수가 제시한 통계적 수치나 역사적 사실 등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연구원의 송원근, 강성원 연구위원은‘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Thing 14)’는 주장에 대하여 유럽에 비하여 미국의 최고경영자 자리가 진입장벽이 높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미국에서의 최고경영자의 연봉이 높은 것은 단지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동운 단국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학자 달라와 케이의 여러 나라 경제 성장 분석 결과를 인용하여 ‘개방정책을 도입하고 무역 장벽을 낮춘 나라가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Thing 7)’는 주장을 반박했다.
금융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있다?
장하준은 서론에서 “이 재앙(2008년 금융 위기)은 결국 따지고 보면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 위기는 다양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그 해결 또한 쉽지 않다. 분명 신자유주의가 최근의 금융 위기에서 비난받아야 할 부분도 있으나 또 다른 책임은 정치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시작인 서브 프라임 문제, 즉, 부동산 과열의 발단은 클린턴 행정부(1993-2001)가 ‘가난한 사람도 내 집 갖기’운동을 벌인 데 있다. 즉 미국의 잘못된 금융제도, 정부의 관리실패가 겹쳐서 미국의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다.
복지국가는 만능해결책?
장하준은 ‘Thing 13’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부가 아래로 분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복지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내실이 탄탄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남유럽 5개국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가 직면하고 있는 재정 위기는 복지를 확대하는 데 맞춰 세금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복지지출이 GDP대비 5.7%정도를 차지하는데, 복지지출이 많은 유럽(최고 31%)에 비해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한다. 올해 들어 무상급식, 무상 복지 등의 논쟁으로 너도 나도 한국의 복지국가화를 주장하지만 늘어날 복지지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 현실적 정책에 관한 설명은 없는 상태이다.
NGL은 23가지를 어떻게 읽었나?
NGL은 이 책에 대해 어느 한 쪽의 입장에 휩쓸리기 보다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다. 첨예한 의견 대립의 대상인 책이라 NGL은 양 측 입장 모두에 타당성과 부분적 오류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북 리뷰를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NGL은 먼저 우리가 특별히 받아들여야 할 부분을 찾아보았고, 다음으로 NGL 맴버 각자의 실생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특별히 공감 가는 대목과 수긍할 수 없는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 보았다.
먼저 책의 가장 서두에 제시된 장 교수의 친필로 적힌 글은 차세대 리더들이 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고민해야 하는지 명확히 말해주었다.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중략)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장하준은 ‘대안 없는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그 역시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고‘더 나은 자본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는 목적 하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서론, p14) 따라서 미래세대는 더 나은 자본주의,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대안 모색의 전 단계로 자유 시장주의의 문제점을 공부할 필요가 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또한 NGL은 ‘Thing4.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부분에 주목하여 미래 세대로서 지녀야 할 책임감과 태도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그 나라의 부자들이 부자 나라의 부자들처럼 자기 나라를 잘 살게 만들지 못 했기 때문(Thing 4, p55)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차세대 리더들은 생산성을 높여 나라 전체를 부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한 나라가 부유해지는 것은 그 시대의 부자들뿐만 아니라 수세대에 걸쳐 쌓인, 더 나은 기술, 조직, 제도, 인프라 등의 산물이라는 분석을 보며, 우리는 늘 앞 세대가 축적해 놓은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NGL 친구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한편, NGL 맴버의 경험은 이 책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컴퓨터 관련 전공 학생 정휘는 23가지 중 컴퓨터와 관련된 ‘thing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부분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장하준은 ‘인터넷은 분명히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만, 세탁기만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시장 개방, 과도한 금융산업 육성 등이 정보통신(IT) 기술의 발전 때문에 불가피하다’라는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분명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제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단순히 수치적 비교로만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평가한 것은 잘못이다.
또한 IT기술의 발달은 유례없는 큰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고, 이는 과거에 불가능하던 시장 또한 가능하게 하였는데 굳이 시장개방에 반대하기 위하여 IT기술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세탁기의 중요성을 부풀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다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봤다.
이 외에도 미소금융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정휘는 thing 15의 마이크로크레딧(미소금융) 제도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공감하기 어려웠다. 장하준은 미소금융 수혜자가 독창성이나 개성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말하지만 정휘가 만난 우리나라 미소금융 수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휘는 직접 미소금융 수혜자의 사업장에 가서 사진도 찍고, 미소금융에서 대출을 받아 개업한 사장들과 대화를 나눠본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 했다.
“한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은 주변에 회사가 많아서 점심에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도시락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배달을 요청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이제는 주문량이 많아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처럼 모든 나라에서 미소금융수혜자가 모두 독창성이나 창의성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줄 알며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NGL이 대학생 친구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며, 그러한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수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더 나은 경제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더 나은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더 나은 자본주의가 어떤 형태인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안목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 자본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최근 ‘자본주의 4.0’, 즉 ‘따뜻한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참고할만하다. 자본주의 4.0은 자유방임 고전자본주의(자본주의 1.0)를 지나 정부주도 수정자본주의(자본주의 2.0), 그리고 시장주도 신자유주의(자본주의 3.0)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상생을 위한 나눔과 배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많은 갈등 문제가 증폭되어 시급히 해소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특히 한국의 고속 성장 속에 숨겨진 불공정한 분배 문제는 한국 사회의 화합과 안정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분배구조 문제는 단순히 신자유주의라는 현 경제체제에 그 책임을 돌릴 수만은 없다. 이는 세계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조차도 골치를 앓고 있는 세계적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것은 북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업들의 이윤추구 동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볼 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로서 제안한 ‘공유가치 창조’, 정운찬 前국무총리의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패러다임 등처럼 국내외 유수 학자들의 제언을 참고하는 것도 대학생들의 고민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다.
대학생 친구들은 어느 한 쪽의 주장에만 매몰되기보다 양쪽의 주장을 모두 고려하여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읽은 친구들은 책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읽을 때 보다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NGL 친구들이 자신의 경험을 책과 연결해보았듯이 현장에서 일해보거나 또는 현장에서 일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책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잘 부합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탁상공론을 피하는 건전한 방법이 되리라고 본다.
NGL(김정휘, 명화연, 이경건, 정슬기)